날이 심하게 추워지고 나서야, 지난봄에 박스에 넣어두었던 상태 그대로 둔 채로, 맨 위에부터 하나씩 꺼내 입던 이 게으르신 몸이 이제야 박스에서 하나씩 옷을 꺼내 정리에 들어갔다.
그런데 꺼낸 옷을 하나씩 개면서 보니까, 다 당신이 사준 것들이다.
파란 청바지는 루시아가 사준 거,
검은 배기바지도, 파란 츄리닝도 루시아가 사준 거...
종류별로 옷을 옷걸이에 건다.
모아놓고 보니까 돈으로만 따져도 값이 꽤 나갈 것 같다.
이게 다 얼마야?
외투는 아무리 싸도 기본 십만 원 이상은 할 거고,
패딩도 삼,사십만 원은 할 거고, 조끼도 사, 오만 원...
너무 많아서 계산하다 절반을 다 세어보기도 한 참 전에 포기했다.
행거에 종류별, 색깔별로 옷을 걸면서 다시 생각한다.
'이 옷을 하나씩 사 모으면서 얼마나 내 생각을 많이 했을까?'
'선물하고, 내가 입기까지 얼마나 기대하고, 또 안 맞지는 않을까 떨리기도 했을까?'
구 년 전,
우리가 사랑을 시작할 때 나의 가족의 반대에서 비롯된 시련으로 당신이 눈물짓는 일이 많았다.
나로 인해 당신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서도, 내 사랑의 크기가 크기 때문에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직 내 노력만이, 우리 사랑의 지속 시간에 정비례하는 결정 요소라고 생각했다. 더해서, 꽤나 자신감을 가지고, 당신의 사랑의 크기는 결코 나의 그것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도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 옷을 정리하다 보니,
정리에는 단연코 재능이 없는 내가, 안 하던 짓을 해서 그런가는 몰라도,
그런 의심이 들었다.
'제자리에서 까치발까지 들며 커보이려는 내 사랑보다,
분주히 움직이며 퍼져나가는 당신의 나를 향한 사랑이 나보다 훨씬 클 수 있겠구나'
뜨끔한 마음을 애써 누르면서, 혼자 생각한다.
'여전히 내 사랑은 결코 당신에 뒤지지 않을 거예요.
적어도, 또 한동안은 그렇게 확신하고 살아갈 거예요.'
내 믿음은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