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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체 Apr 20. 2021

하늘을 보는 방법

Where you at?

약속이 없는 휴일이면 집 근처 카페에 나간다. 카페에 가서는 밀린 책을 읽는다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시간을 때우는 걸 즐긴다. 주말에는 일과 관련된 건 한 글자도 보고 싶지 않으므로, 노트북은 가지고 가지 않는다. 그날도 어김없이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친구가 나타났다.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친구라서, 우리는 가끔씩 이렇게 약속도 하지 않고 카페에서 마주치는 일이 있다. 보통은 일행이 아닌 척, 따로 앉아서 각자 할 일에 몰두하는 편인데, 오늘따라 친구가 내 앞자리에 털썩 앉았다. 대개 이럴 때는 고민이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 했다던 소개팅 이야기라도 하려나? 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조용히 읽던 책을 덮었다. 친구는 어딘가 뚱한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요즘에 하늘은 좀 보면서 사나?


내가 하늘을 보는 이유는 언제나 명확했다. 날이 맑은지, 그렇지 않은지, 그렇다면 우산을 챙겨야 할지, 반팔을 입어야 할지 등을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뜻이라면 매일같이 하늘을 보고 있다고 대답하자, 곧장 비난이 날아왔다.


너도 이제 낭만이 없구나. 내가 알던 이루체 어디갔니.


갑자기 얻어맞은 기분이 되어, 그러는 너는 하늘을 얼마나 자주 보면서 살길래 그러느냐고 되물었다.


나도 못 보고 사니까 그래. 너라면 보고 살지 않을까 싶었지.


실망한 낯빛으로 주섬주섬 노트북을 펴길래 뭘 하느냐고 물었다.


잔업.

주말인데?

주말이니까 잔업이지. 평일이면 업무고.




그러고 보면 마냥 하늘만 쳐다보면서 살던 시절이 있었다. 하늘만 마냥 바라보면서, 내가 딛고 있는 땅에 대해선 조금도 생각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나는 왠지 남들과 다른 재능, 남들과 다른 통찰력을 가지고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던, 얼마든지 하늘을 날아오를 수 있을 거라고 믿고 하늘만 주야장천 바라보면서 살던, 그런 시절.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게, 나는 닭 쫓던 개가 되고 말았다. 처음에 내가 하늘을 보며 쫓던 건 독수리나 매였는데, 독수리도, 매도 나의 몫은 아니었다. 그러면 꿩이라도 잡아야지 싶어서 쫓았지만 그 역시 나의 몫이 아니었다. 꿩 대신 닭이라지만, 결국 나는 닭 쫓던 개가 되었다.


그 뒤로는 닭도 놓친 개가 하늘은 쳐다봐서 무엇하겠느냐며, 일절 하늘을 바라보는 일 없이 고개를 떨군 채 땅바닥만 쳐다보았다. 그러다 보니 앞서간 개들의 발자국이 보였고, 나는 땅바닥만 열심히 보면서 그들이 걸어간 발자국을 뒤쫓았다. 왜 더 먼저 땅바닥을 쳐다보고 살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와 함께.


일부러 하늘에서 눈을 돌려도, 영영 피하고만 살 수는 없는 거라서 자꾸만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눈 앞에 보이는 하늘에서 얄팍한 해방감을 느끼는 내가 싫어서, 일부러 고갤 더 깊이 떨구자 나는 어느새 거북목 직장인이 되어있었다. 이제는 하늘을 보려고 해도 그거 뭐, 어떻게 보는 건데 싶은 마음이 앞서서 유튜브에 하늘 보는 방법을 검색한다. 남이 찍어둔 하늘을 보면서 나도 하늘이나 찍어볼까 싶은 마음이 들지만, 내 하늘이 대관절 어디로 갔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고개만 들면 거기 내 하늘이 있을 텐데, 그걸 보는 게 두려워서, 아니, 그걸 보는 걸 남들에게 들키는 게 두려워서, 나는 점점 더 심한 거북목을 가지게 되고 말았다.


너는 하늘을 보면서 살고 있느냐고, 나는 물을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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