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가는 게 그렇게 좋아?"
친구 A는 여행을 싫어하는 편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굳이 반 개월 치 생활비에 해당하는 돈을 써가면서 서울에서와 그다지 다를 것도 없는 경험을 하는 게 정말로 즐거운 일인 건지, 힐링이 되기는 되는 건지 모르겠단다. 매우 합리적인 이유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와는 반대로 나는 1년에 적어도 두세 번쯤은 국내든 해외든 여행을 간다. 여행을 다녀오면 주변에서 어디를 갔는지, 뭘 먹었는지, 코스는 어떻게 짰는지 물어보지만, 나는 그들에게 내 여행 코스 같은 건 특별히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남들이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을 돌아다니는 편이 아니니까. 그런 내가 A에게는 일정 부분 신기해 보였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도 여행 가는 거 그렇게 안 좋아해."
의외의 대답이라는 듯, A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럼 대체 왜 그렇게 있는 돈 없는 돈 긁어모아가면서 뻔질나게 돌아다니느냐고 A는 재차 물었지만, 마땅히 어떤 대답을 돌려주면 좋을지 모르게 되어, 그날의 여행에 관련된 대화는 끝을 맺었다.
여행이란 모름지기 즐거운 일만 있지는 않다. 국내 여행이라면 무거운 짐을 들고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기차든 버스를 타고 목적지까지 이동을 해야 한다. 그런데 심지어 날씨도 궂어서 비까지 주룩주룩 내린다면 왠지 귀중한 여행을 망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조금 우울해지기도 한다. 차가 있다면 사정이 좀 낫겠지만, 그래도 잘 모르는 길을 내비에 의존해서 꾸역꾸역 찾아가야 한다. 주차를 고민해야 하고, 어느 맛집에 찾아가서도 소주 한 잔 기울일 수 없다. 숙소는 아무리 편하대도 내 집만 못하고, 게스트 하우스라면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씻고 먹고 잠을 자야만 한다.
말이 그나마 통하는 국내여행이 이럴진대, 하물며 해외여행이라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여행 블로그에 올라온 정보에 의지해서 여행을 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대개 그런 장소는 여기가 한국인지 외국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한국인 투성이다. 그렇다고 로컬만 안다는 집에 마구잡이로 들어갔다가는 언어의 장벽, 문화의 장벽에 막혀 긴장된 상태로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게 된다. 짧은 영어라도 통한다면 다행이겠지만, 여행지에서 우리는 '의외로 영어가 그다지 글로벌하지 않은 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생긴다. 어떻게든 손짓 발짓으로 해결하고 나면 진이 쭉 빠져서 빨리 숙소에 돌아가 쉬고 싶어 지게 된다. 여행이란 이렇게 불편함 투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다시 짐을 싸고 여행을 떠난다.
곰곰이 고민해 본 끝에 다다른 나의 여행의 이유에 대한 결론은 '새로운 나'의 발견이었다. 평상시에는 존재하고 있는지도 몰랐던 나의 감정들을 오롯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되는 것은 여행지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새로운 장소에 갔을 때나 이전까지의 내 모습을 모르는 새로운 사람과 대화할 때, 나는 약간의 두려움과 설렘을 가지고 상황에 임한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바라보게 된다. 그건 친구와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나는 혼자서 하는 여행을 선호한다.
그렇게 여행을 통해서 나를 한 번 바라보게 되면, 나는 생각보다도 훨씬 더 단단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억지로 용기를 낼 필요는 없다지만, 의외로 혼자서 뭔가를 주문한다든지 목소리를 높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언제나 주변 사람들에게 호기롭게,
"나는 혼자가 좋아. 혼자일 때의 나는 누구에게도, 무엇도 꾸밀 필요가 없으니까 그래."
라고 말을 하고 다니지만 사실은 그건 단단해 보이기 위한 껍데기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았던 것도, 정말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도 나는 남들에 비해서는 그다지 열심히 살진 않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처음 느끼게 된 것도 여행지에서의 나의 모습을 통해서였다.
짤막한 여행을 통해 이렇게 나와 친해지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남은 것은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나 또한 다른 사람들처럼 여행의 끝이 아쉽지만,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 본 일은 없었다. 여행지에서 나를 깨닫고 알아차리고자 하는 건,
결국 현실을 더욱 잘 살아내기 위함이니까.
여행이란 현실의 나를 위한 선물이니까.
현실의 내가 더 나아지기를 바라니까.
모든 여행에는 끝이 있다. 그 끝은 결국 내가 돌아가야 할 곳, 나의 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일을 말한다. 돌아갈 곳이 없는 여행이란 결국 방랑일 뿐으로, 나는 그렇게 방랑을 즐길 만큼 용감한 사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