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 예정 42분

by 이루체

자정이 넘은 시각, 습관처럼 배달 앱을 연다. 정말 배가 고픈 건지, 그냥 이 조용한 거실이 허전한 건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요즘엔 이 시간에도 문 연 가게가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저녁은 먹었다. 대충이긴 했지만.


화면 속 리뷰 사진들이 눈부시게 환하다. 이 시간에 이만큼 밝은 건 이 화면밖에 없을 것 같다. 떡볶이, 만두, 볶음밥. 장바구니에 넣었다가 빼기를 몇 번이나 반복한다.


떡볶이는 너무 밀가루뿐인 데다 매우니까 속에 안 좋을 거야. 볶음밥은 양이 많다. 결국 고른 건 만두 1인분.


만두 하나에 이 고민이라니, 나도 참.


결제를 마치고 나니 '도착 예정 42분'이라는 문구가 뜬다.


42분. 결제 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생각한다. 진짜 먹고 싶었던 건가. 아까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 하는 동안에도 사실 뭘 먹고 싶은지는 잘 몰랐다. 그냥 뭔가를 고르는 행위 자체가 필요했던 것 같기도 하다. 모르겠다.


휴대폰을 소파에 내려놓는다. 방금 전까지 들리지 않던 벽시계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엔 짧고, 가만히 앉아 있기엔 막연하게 긴 시간이다. 헤드폰을 쓰고 노이즈 캔슬링을 켠다. 시계 소리마저 사라진다. 아무 음악도 틀지 않았다. 그냥 조용한 게 좋아서. 아무것도 안 들리는 상태로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이 새벽이 나한테만 멈춰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여기까지는 안 들어온다. 가끔 이런 시간이 좋다.




어쩌면 나는 만두가 아니라,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를 주문한 걸지도. 내가 요청했고, 그 요청에 응답해서 누군가가 이 새벽에 밤길을 달려오고 있다는 거.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나를 향해 뭔가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 이 시간이 좀 덜 쓸쓸해지는 것 같다.


핸드폰 화면이 켜진다. 배달이 완료되었습니다. 헤드폰을 벗으니 세상이 다시 시끄러워진다. 시계 소리,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까지. 고요가 한꺼번에 풀리는 느낌이 잠깐 낯설다.


일부러 10까지 숫자를 세고 현관문을 연다. 배달 기사는 이미 떠나고 문 앞에는 비닐봉지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복도 형광등 아래에서 비닐이 반짝인다. 봉지를 들고 들어와 식탁에 올린다. 뚜껑을 열자 하얀 김이 피어오른다. 만두 여섯 알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하나를 입에 넣는다. 뜨겁다. 입천장이 살짝 데일 것 같은 열기가 입 안 가득 퍼진다. 저녁을 이미 먹었기에 배는 충분히 부르지만, 묵묵히 씹어 삼킨다. 뜨거운 게 입 안에 있으니까. 이걸 아직 뜨거울 동안에 가져다준 사람이 있으니까. 이게 식기 전에 먹어야 할 것 같으니까. 이유는 그 정도면 될 것 같다.


두 알째, 세 알째. 간장에 찍어 먹는다. 짭짤한 게 입 안에 남는다. 네 알째를 먹고 나니 배가 묵직하다. 남은 두 알을 보다가 뚜껑을 닫고 냉장고에 넣는다. 내일 아침이면 식어버린 만두를 보며 어젯밤의 충동을 후회하겠지. 근데 나는 냉장고에 뭐라도 들어 있으면 일단 안심이 되는 사람이라. 내일의 나는 내일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냉장고 한 칸에 내일의 끼니가 저장되었다는 사실이 작고 소중한 안도감을 준다.




배달 앱을 열어 리뷰를 쓴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다 쓰고 보니 좀 민망하다. 새벽 한 시에 만두 리뷰라니. 별 다섯 개 눌러서 보냈다.


이를 닦고 손을 씻는다. 손끝에 희미하게 남은 간장 냄새를 맡으며 거실 불을 끈다. 다시 시계 소리가 들려오고, 거실은 익숙한 어둠에 잠긴다. 헤드폰이 소파 위에 그대로 놓여 있다. 방으로 돌아와 이불을 끌어올린다. 배가 부른 것도, 고픈 것도 아닌 어중간한 충만함 속에서 눈을 감는다.


간장 냄새가 아직 희미하게 손끝에 남아 있다. 뭐,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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