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올 때가 아쉽다

by 이루체

바다에서 올라오면 귀가 먹먹하다.


수면 위로 나오는 순간, 소리가 한꺼번에 밀려든다. 파도, 보트 엔진, 누군가 웃는 소리. 한쪽 귀가 약간 먹먹하다. 아까 그 고요가 아직 안 빠진 것 같다.




16미터쯤 내려가면 발차기를 멈춘다. 몸이 알아서 가라앉는다.


그 구간에선 심장 소리밖에 없다. 쿵, 쿵. 느려진다. 생각도 느려진다. 아무도 나한테 뭘 기대하지 않고, 메시지도 안 온다. 그냥 가라앉으면 된다.


올라올 때가 아쉽다. 매번.


수면이 가까워지면 햇빛이 일렁인다. 물 밖으로 나오면 숨을 내뱉어야 한다. 후. 다시 세상이 시작된다.




짐을 싣고 차에 탔다. 머리카락에서 물이 떨어지고, 소금기가 목덜미에 말라붙는다. 히터를 켜니 바다 냄새가 차 안에 번졌다.


내비게이션을 켰다. 집까지 두 시간 반.


라디오를 틀었다가 껐다. DJ 목소리가, 광고가, 노래가. 전부 너무 빠르다. 아직 거기 속도에서 못 돌아왔다.


창문을 조금 내리고 바람만 남긴다.




고속도로에 올라가니 해가 진다.


사이드미러에 바다가 보이다가, 안 보인다. 터널, 휴게소. 차선을 바꿀 때마다 지상의 감각이 돌아온다. 핸들 잡은 손의 힘. 엉덩이에 닿는 시트. 브레이크 밟을 때 발바닥의 저항.


물속에선 저항이 없었다. 16미터 아래에선 그냥 떨어졌다.


여기선 계속 뭔가를 밟아야 한다.




집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엔진을 껐다.


조용한데, 아까 그 조용함이 아니다. 물속에선 전부를 감쌌다. 귀도, 피부도, 머릿속도. 여긴 그냥 소리가 없는 거다.


차에서 내려 장비 가방을 꺼냈다. 어깨가 무겁다. 아까까진 무중력이었는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신발을 벗었다. 불은 켜지 않았다.


보일러가 돌아간다. 이 소리, 싫지 않다.


맥주를 하나 따서 소파에 앉았다. 장비는 내일 씻고, 웻수트는 내일 널고. 다 내일이다.


한 모금. 목구멍이 짜다. 아직 바다가 남아 있다.


귀가 조금씩 뚫리면서 바깥에서 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돌아왔구나.




내일이면 이 고요를 까먹겠지. 일상이 다시 차오르면 물속 같은 건 까마득해진다.


창밖이 까맣다. 맥주가 미지근해졌다.


먹먹하던 귀가 다 뚫리니 시계 초침이 들린다.


아쉽다,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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