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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 현 Dec 12. 2023

그 남자의 행방이 묘연 (猫緣)하다 -6-

고양이 사이에 왠 범고래가..

저 범고래인지 고양이인지 구분이 안 가는 덩치는 우리 집 5냥 이중 2번째로 나이가 많은(원래 나이 서열 2위 공주는 동생이 데려갔다) '가을이'다. 시루 녀석이 오기 전에는 공주를 제외한 우리 집 고양이 중 유일한 암컷이었고 철부지 블랙이, 늠름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어린 쪼꼬를 놀아주던 상냥한 누나였다.


시루가 오기 전에는....


원래 가을이는 내가 전에 살던 오피스텔에서 나와 단둘이 지내던 아이였다. 넓지 않은 집이어도 가을이를 위한 캣타워가 두 개에 베란다 전체를 가을이의 공간으로, 부엌을 가을이의 사료와 간식으로 채울 정도로 난 가을이를 키우는 데에 진심이었고, 가을이를 매우 사랑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본가로 나와 같이 넘어와 내 동생과 어머니마저 각자 자신의 직장 기숙사로 들어가 버린 탓에 4마리의 냥이들이 장악해 버린 전보다 넓은 집에서 나와 단둘이 지내며, 나에게 애정을 듬뿍 받던 가을이는 낯선 환경에 위축되어 버렸다.


게다가 같은 암컷인 '시루'가 오자마자 내가 완전히 자기를 외면했다고 생각했는지. 내 전용 작업실(일명 공부방)에 다른 아이들이 몰려와있어도, 가을이는 큰 방 침대에 웅크리고 앉아 내가 먼저 다가와 주기를 기다렸다.


내가 사료를 주기 전에는 웬만하면 잘 움직이지도 않았고, 다른 아이들이 다가가도 경계하며 하악질을 해댔다.


난 그런 가을이가 안쓰러웠다. 늦둥이 동생이 생겨 모든 사랑과 관심을 빼앗겨 버린 장녀의 심정일 것 같아서 난 최대한 따로 시간을 내서 가을이가 좋아하는 간식인 닭가슴살과 캣닢 스프레이로 가을이와 단둘이 시간을 만들어 챙기기도 하였다.


시루를 포함해서 어린 새끼일 때 온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가을이는 나와 처음 만나던 순간부터 이미 성묘였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확실히 1살 이상이라고 한다. 다행히 전에 임신하여 새끼를 낳은 적은 없다고 한다.


가을이를 처음 만난 곳은 단기로 일을 하던 대형트럭을 정비하던 정비소의 창고에서였다. 선배들이 따로 참치캔으로 밥을 챙겨주던 고양이였는데 정비소 주위에 고양이라고는 이 녀석 한 마리뿐이었다. 오히려 유기된 강아지들이 들개가 되어 무리를 이루어 차량을 정비하러 오던 손님들을 습격한 사례는 종종 있었고 주위에 로드킬 사체들도 대부분 강아지들이었다.

가을이는 큰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고, 사람도 워낙 잘 따르는 얌전한 성격이지만 창고 도색을 해놓으면 모르고 밟아버려 건물 안에 페인트 발자국을 남겨놓기도 했다. 물론 가을이의 잘못도 아니고 페인트를 인지하지도 못하는 걸 충분히 알지만 가끔 보안시스템에 감지되어 경보가 울리기도 해서 말썽이 자주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들개, 로드킬 위험으로 녀석의 안전이 걱정되었다.


큰 마음을 먹고 퇴근할 때 라면 박스에 가을이를 집어넣어 집에 오는 동안 가을이는 한 번도 울지 않고 도망치려는 시도 조차 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 박스에서 꺼내줄 때까지 얌전히 있었다. 배변활동도 처음에 낯선 환경에 긴장하여 내 이불에 볼일을 보긴 했지만, 모래를 깔은 화장실을 마련해 주자 바로 거기서 볼일을 해결할 정도로 똑똑했다.


난 내 은행업무용 비밀번호와 현관 비밀번호를 가을이를 집에 데려온 날로 지정했을 정도로 가을이를 사랑하고 가을이도 그걸 안다. 내 애정을 혼자 듬뿍 받던 가을이가 갑자기 처음 보는 다른 고양이들과 합사를 하더니 이젠 웬 새끼냥이에게 내 애정을 뺏기기까지 하니 얼마나 속상했을까.. 가을이의 목소리는 힘이 없어졌고, 구석에 숨는 일도 많아졌다.


고양이는 영역동물이라 다묘가정에서 서로 다투는 일은 흔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아이가 속상한 건 나로서도 마음이 아프다. 가을이가 가장 좋아하는 닭가슴살 간식에 캣닢 가루를 버무려서 오늘은 가을이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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