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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 현 Dec 19. 2023

그 남자의 행방이 묘연 (猫緣)하다 -7-

숯덩이

저기 있는 공기정화용 참숯은 우리 집 고양이중 한 마리인 세 살 ‘블랙이’다.

 블랙이와 난 2020년 가을이 시작되어 가는 9월에 처음 만났다. 보기 드문 올블랙 고양이라 이름도 멋스럽게 검정을 뜻하는 영단어 ‘블랙’이라고 지었다. 엄마와 동생이 친근하게 ’ 블랙이‘라고 부른다.


이 녀석을 만난 건 퇴근길에 옆 동네 골목을 지나던 중, 골목길 식당 입구에 놓인 캣타워에서 뛰어놀던 조그마한 숯덩어리를 발견했을 때였다. 2020년 9월 14일. 사람 손을 탄 건지, 어린 새끼임에도 애교도 많고 겁이 없어서 손으로 장난을 치며 놀아주자 내 손을 먹잇감으로 생각하며 사냥놀이를 해댔다.


그로부터 며칠뒤 주말. 그때와 같은 골목을 지나다가 어떤 여성분이 품에 뭔가를 꼭 안고 마주 오는 걸 보았다. 품에 있는 게 뭔가 했더니 며칠 전에 본 그 숯덩이다. 여성분에게 품에 있는 그 고양이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건물 3층 난간에 매달려 있던걸 구해주었다고 한다.


“저기 저 건물 보이시죠. 저 창문 난간에 아이가 매달려 있더라고요..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아서 제가 올라가 구해주었어요.. 그런데 이 아이 아세요?”


구면이라고 답했다. 그러더니 여성분은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혹시 죄송하지만 이 아이 좀 데려가 주실 수 있나요? 제가 데려가면 좋겠지만 저희 집엔 강아지가 두 마리나 있어서요.. 아이도 그쪽을 겁내지 않는 것 같구요.”


좀 고민이 되었다. 난 독립을 했지만 내가 사는 집이 온전히 내 집은 아니다. 반려동물을 키우려면 건물주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그렇다고 이 아이를 그냥 길에 내버려 두기가 망설여졌다. 지금도 창문에서 떨어질 뻔하던걸 이 여성분이 구해주셨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어쩔 뻔했나.. 그것뿐만이 아니라도 길거리는 어린 새끼고양이가 혼자 살아가기에는 위험요소가 너무나 많다.


“그럼 일단, 제가 데리고 갈게요. 제가 키울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임시보호라도 해볼게요. 입양자가 생길 때까지는 제가 데리고 있어야죠”


그 입양자가 나였다.


그렇게 고깃집 불판 밑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생긴 조그만 숯덩이를 품에 안고 집에 온 그날부터 블랙이와 나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한 달 뒤에 가을이를 데려와 둘의 합사스트레스로 블랙이가 자꾸 배변을 실수하자, 블랙이 를 본가에 있는 다른 고양이들과 합사 시켰다. 동생이 보내준 영상을 보니, 원래 집에 있던 10살 이상의 노묘 두 마리는 ‘또 하나 왔구나’하며 시큰둥해 있던 반면에 6월부터 집에 있던 ‘쪼꼬’는 자기 또래의 고양이를 보며 반가워하더니


그대로 제압해 버렸다.


<쪼꼬는 몸이 허약했지만 후천적으로 근육이 많이 생겨 현재 우리 집 모든 고양이중 가장 강하며 서열도 높다(시루에겐 약하다). 거의 고양이 마동석, 냥동석 급.>


쪼꼬는 블랙이를 보더니 마운팅(등짝을 보자)을 시도하더니 제압해 버렸다. 수컷끼리의 마운팅은 서열을 정리하는 거라고 했다.


그 이후 블랙이는 쪼꼬와 늘 붙어 다니며 서로 형제처럼 동고동락하며 지낸다. 절친한 친구이자 형제가 되어 잠도 함께 자며, 둘 중 한 마리가 분리되어 있으면 다른 한 마리가 엉엉 울며 찾아 나선다.


블랙이는 시루가 오기 전까지 우리 집 냥이 중 가장 먹성이 좋은 대식가여서(시루는 오자마자 우리 집 기존 모든 냥이들의 기록을 갈아치우는 중이다) 현재는 조그만 숯덩이에서 공기정화용 대형 참숯으로 진화했다.


살이 너무 쪄서 집에 오신 손님이 ‘고양이는 원래 저런가요..? 제가 알고 있는 이미지랑은 다르네요; 집고양이라 그런가’라고 놀랠정도다. 실제로 살 때문에 내 반찬을 가로채려 식탁 위로 점프하다 뱃살에 걸려 다시 땅에 떨어져서 민망한지 도망간 이력이 있고, 주방 싱크대 밑 배수관이 신기하다고 들어간 뒤 뱃살에 끼어 나오지 못해 내가 직접 빼내준 적도 있다.


덩치 하나는 제일 큰 블랙이. 그래도 애교도 많고 사람손도 잘 타서 엄마와 동생도 많이 예뻐한다. 부르면 달려오는 유일한 고양이기도 하다. 살이 쪘지만 들었을 때의 묵직함이 이아이의 매력 필살기이며 뒷다리를 잡았을 때의 그립감은 묘한 중독성이 있다.


이상이 우리 집 블랙이와 나의 묘연의 시작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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