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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 현 Dec 26. 2023

그 남자의 행방이 묘연 (猫緣)하다 -8-

꼬리가 물음표네요..?

지금 내 옆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는 요구르트 푸딩 젤리 닮은 이 녀석은 우리 집 고양이중 최장수 묘르신, 묘생 14년 차로 접어들어가는 ‘헤라’다. 우리 집 고양이들 중 가장 처음으로 우리 집에 왔고, 나의 냥집사 생활을 시작시킨 장본묘이다.


내가 중학생일 때, 어머니가 운영하시던 식당 주변에는 먹이를 구하러 오는 고양이들이 많았는데 헤라는 그중 한 마리의 새끼로 추정된다. 어느 날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려서 어머니가 문을 열고 나가보니 어린 새끼고양이가 혼자 있었고, 어미가 나타나지 않아 걱정이던 때에 초등학생 여자아이 두 명이 키우겠다고 데려갔다가 부모님이 반대하자 다시 어머니께 데리고 왔다. 가여운 마음이 들어 새 가족을 찾아줄 때까지 데리고 있으려던게 14년이나 되어간다. (헤라와 나는 내가 15살이던 2010년 5월에 처음 만났다. 정말 신기하게도 헤라와 처음 만난 날짜가 내가 입대한 날짜와 같다)


집에 데려온 지 2주일이 되어 갈 때쯤, 고양이를 입양하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아 별수 없이 우리 가족이 키우기로 결정했는데 그때까지 ‘야옹이’라고 부르다가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다. 수컷인 이 녀석을 여자이름 같은 ‘헤라’로 지은 데는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


진짜 여자아이인 줄 알았다.


지금이야 내가 반려동물산업 전공자이기도 하고 고양이를 여러 마리 다루다 보니 암수 구분을 헷갈리는 일은 거의 없는데 헤라는 ‘처음’ 키우는 고양이다 보니 이 아이가 암컷인지 수컷인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그리고.. 헤라한테 미안하지만 수컷 치고 작았다.. ;;


헤라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당시에도 난 책을 좋아해서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도 책을 가지고 들어갔다. 지금으로 치면 변기에서 볼일 볼 때 유튜브 보는 셈. 당시 내가 읽던 책은 ‘그리스 로마 신화’였는데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시던 어머니가 그 책을 보시고는 그리스신화 여신들 중에서(헤라가 암컷인줄 알고) 이름을 골라보자고 하셨다. 비너스, 아테나, 다이애나, 가이아 등등이 후보로 나왔지만 엄마는 이름이 너무 길면 부르기 어렵다고 부르기 쉬운 걸로 정하자고 하셔서 결정된 게

‘헤라’다. 그리고 중성화 시기 때가 되어야 헤라가 수컷인걸 알았다.


뭐든지 처음은 어색한 법. 고양이를 어떻게 키우는지 아무것도 모른 상태이다 보니 화장실도 강아지처럼 배변 패드를 깔아줘야 하는 줄 알고 집에 있는 두 개의 화장실 중에서 그나마 덜 이용하는 화장실의 한쪽 구석에 강아지용 배변패드를 넓게 깔아줬다. 밥도 물에 헹궈서 염분기를 뺀 참치에 식은 밥을 섞어 물에 말아줬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동물보호단체에서 기겁할 내용이지만 가족 중에서 헤라를 진심으로 아끼고 돌보던 건 나 혼자였고 지금처럼 스마트폰이나 유튜브로 필요한 정보를 자유롭게 알아보는 시대도 아니어서 그것도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던 최선이었다.


헤라와 14년 가까이 살면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길고양이 출신에 어미와 일찍이 떨어져 영양분이 부족했던 헤라는 꼬리가 꺾이다 못해 물음표 마냥 꺾여있었고 2개월 차에는 기력을 잃고 먹는 것도 거부해서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지금은 든든하게 우리 집에 사는 다섯 마리의 고양이들의 큰 어른으로써 리더자리를 지키다가 지금은 자신의 위치를 ‘쪼고’에게 물려주었다. 마치 자식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은퇴하는 현명한 왕처럼.


지금 헤라의 나이는 14살. 사람으로 치면 80대에 접어드는 노인이다. 츄르 간식이나 영양제 없이 사료만 먹였는데도 기특하게도 지금까지 건강하게 자라주었다. 중학생 때 헤라를 처음 만나 곧 서른이 되는 나는 헤라를 볼 때마다 그간의 감정이 복받칠 때가 많다.


예전처럼 내 발을 장난감 삼아 덮치고 우다다를 하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내가 고개를 들이대면 내 콧등을 혀로 핥아주는 나에겐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다. 이 아이를 만난걸 기점으로 난 고등학교 전공을 반려동물 산업과로 정했고 14년 가까운 시간 동안 여러 마리의 길고양이들을 구조해 새로운 가족을 찾아주고 남은 아이들은 내가 보호하기로 결정해 지금의 5냥이 가족이 만들어졌으니 말이다.


지금은 가끔 허공을 보고 울거나 침대에서 하루종일 잠만 자는 무료한 나날을 보내지만 가끔 자신의 아들과도 같은 쪼꼬를 직접 그루밍해주거나 막내 시루를 놀아주는 등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헤라.


나도 알고 있다.


함께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직접 길에서 새끼고양이들을 발견해 보호하면서 수많은 고양이들이 내 손위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걸 느꼈지만, 14년간 함께한 헤라도 이제 고양이별로 보내야 할 때가 다가왔다는 게 실감이 나질 않는다. 기왕이면 오래, 좀 더 같이 있고 싶다.


난..


이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고, 사랑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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