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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변화해야 한다.

by 루케테

사람에게는 결국 두 가지 선택만이 남는다. 움직일 것인가, 머무를 것인가. 하지만 이 질문이 단순히 물리적인 이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움직인다는 것은 변화한다는 뜻이고, 머문다는 것은 변화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변화란 무엇보다도 사람의 본성, 그 근본적인 성질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길 위에서 혼다 오토바이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사람을 보자. 엔진 소리가 귀를 찢고, 바람이 헬멧을 때린다. 그는 자유롭고 역동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잠깐, 그가 왜 오토바이를 타는 걸까? 단순히 좋아서, 그냥 즐거워서, 아무런 목적 없이 자신의 본성이 시키는 대로 그러고 있다면? 그렇다면 그는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빠른 속도로 달려도, 아무리 멀리 가더라도 그는 본질적으로 머물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내면, 그의 본성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한 사업가가 있다. 그는 끊임없이 성공가도를 달린다. 작은 회사에서 시작해 중견기업을 거쳐 대기업의 CEO가 된다. 재산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사회적 지위는 하늘을 찌른다. 언론은 그를 '혁신의 아이콘'이라 부르고, 사람들은 그의 성공 스토리에 박수를 보낸다. 겉보기에는 이보다 더 역동적인 삶이 있을까 싶다.


하지만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자. 그는 여전히 20년 전과 같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더 많은 돈, 더 높은 지위, 더 큰 권력. 그의 사고방식도, 가치관도, 타인을 대하는 방식도 본질적으로는 변하지 않았다. 성공의 규모만 커졌을 뿐, 그 안에 있는 사람은 그대로다. 이런 사람이 과연 움직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는 거대한 원 위에서 맴돌고 있을 뿐이다. 더 큰 원일 뿐,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이다.




평범한 직장인 김씨를 보자. 그는 40년 동안 한결같이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오후 6시에 퇴근한다. 매주 금요일에는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주말에는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휴가 때는 항상 같은 펜션을 간다. 겉보기에는 정적이고 변화 없는 삶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가 매일 자신을 돌아보고, 어제의 실수를 반성하며, 더 나은 아버지, 더 나은 남편, 더 나은 동료가 되려고 노력한다면? 그가 읽는 책 한 권, 나누는 대화 하나하나를 통해 자신의 편견을 깨뜨리고 시야를 넓혀간다면?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연예인 박씨는 어떨까? 그는 20대에 데뷔해서 지금까지 30년간 톱스타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광고 모델로도 활약하고,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재치 있는 입담으로 사랑받는다.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에 도전하고,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다. 겉으로는 변화무쌍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의 본성은 어떨까? 여전히 관심과 인정에 목마르고, 여전히 표면적인 관계에만 익숙하며, 여전히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기고 산다면? 그렇다면 그 모든 화려한 활동들도 결국 한 자리에서 맴도는 것에 불과하다.


정치인 이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시의원에서 시작해서 구청장, 시장, 도지사를 거쳐 국회의원이 되었다. 언뜻 보면 계단을 차근차근 올라가며 성장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본질을 보자. 권력욕, 출세욕,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마음가짐이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하다면? 단지 그 욕망을 펼치는 무대만 커졌을 뿐이라면? 그렇다면 그는 본질적으로 한 치도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종교인이라고 해서 다를 것도 없다. 어떤 스님이 있다고 하자. 그는 젊은 시절 출가해서 수십 년간 수행했다. 이제는 큰 절의 주지가 되어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다. 불교계에서는 존경받는 고승으로 통한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여전히 명예욕과 권력욕이 꿈틀거리고 있다면? 겸손함은 겉모습일 뿐이고, 진정한 자비심이나 지혜는 깊어지지 않았다면? 그렇다면 그 긴 수행의 세월도 사실상 제자리걸음이었던 셈이다.




우리는 여기서 흔히 착각하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외적인 변화를 내적인 변화로 착각하는 것이다. 지위가 높아지고, 재산이 늘어나고, 활동 반경이 넓어지는 것을 성장으로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움직임, 즉 변화는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의 본성이, 근본적인 성품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는 것이다.


탐욕스러웠던 사람이 베풀 줄 아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 이기적이었던 사람이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 성급했던 사람이 인내심을 갖게 되는 것, 편견에 사로잡혔던 사람이 열린 마음을 갖게 되는 것. 이런 변화야말로 진정한 움직임이다. 설사 그 사람이 평생 같은 동네에서, 같은 집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 살았다 하더라도 말이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아무리 다양한 경험을 하고, 아무리 많은 곳을 다녀도,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도 본성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마치 더 큰 우리에 갇힌 것과 같다. 우리가 커졌을 뿐, 여전히 갇혀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도 어디를 가든 같은 음식만 찾고, 같은 스타일의 호텔만 머물며,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하고만 어울린다.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려 하지도 않고, 다른 관점을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다. 이런 사람의 여행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몸은 이동했지만 마음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수십 권의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도 여전히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지식은 늘었지만 지혜는 늘지 않았다. 정보는 축적되었지만 본질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런 독서가 과연 성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진정한 변화, 진정한 움직임은 때로는 고통스럽다. 기존의 자신을 부정해야 하고, 편안했던 안전지대를 벗어나야 한다. 자존심을 굽혀야 할 때도 있고, 잘못을 인정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새로운 자신이 될 수 있다.


결국 움직임과 머무름의 차이는 외적인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변화에 있다. 본성의 변화에 있다.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면 움직이는 것이고,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가 근본적으로 같다면 머물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것을 이뤘어도, 아무리 높은 곳에 올라도, 아무리 화려한 삶을 살아도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답은 명확하다. 움직여야 한다. 변화해야 한다. 본성을 바꿔나가야 한다. 비록 그 과정이 불편하고 위험해 보일지라도. 왜냐하면 머무름은 사실상 퇴보와 같기 때문이다. 세상은 계속 변하는데 우리의 본질만 그대로라면, 결국 뒤처질 수밖에 없다. 진정으로 움직이는 것만이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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