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전하는 사람이다.
기꺼이 도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억지로 도전하는 사람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김민기 님의 '봉우리'라는 노래에는 이러한 가사가 나온다. 자신이 가장 높다고 생각하는 봉우리에 힘들게 올라간 노래 속 화자는 나무등걸에 걸터앉아서 이렇게 얘기한다.
허나 내가 오늘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화자는 바다를 생각하기도 하고,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지금 여기'일지도 모른다고 얘기를 하고 있지만, 나는 나무등걸에서 잠시 걸터앉아 아래에 있는 바다를 잠깐 본 뒤, 이어져 있는 봉우리를 향해 올라갔다.
오르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었으니까...
나무등걸에 쉬고 있으면 마음속에 누군가가 계속 움직이라고 재촉했으니까...
원하는 수준의 봉우리에 올라가면 몸도 마음도 편안해질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저 하나의 봉우리에 오르고, 또 다른 봉우리가 나타나면 그 봉우리를 또다시 오르고, 그렇게 계속 반복했다.
그런데, 왜일까?
나이가 들면서 육체와 정신은 점점 약해지는데,
눈앞에 놓인 봉우리로 가는 길은 더욱 험하고, 가팔라지기만 하는지...
내 삶이 편안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봉우리에 올랐는데,
봉우리에 오르면 오를수록 왜 더욱 힘들어지기만 하는지..
조직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삶에 더욱 여유가 없고 식견은 더욱 좁아져만 가는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더욱 높이 보고, 더욱 멀리 나가고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고 하였는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지위 상승을 꿈꿨는데.
언제부터일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얻는 것은 '인기' 뿐이고
운신의 폭은 점점 좁아져만 가는지...
권리는 줄어들고, 책임만 많아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봉우리에 올랐다.
머리와 마음으로는 봉우리에 올라봤자 큰 혜택이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습관이 되어 오르고 또 올랐다.
처음 봉우리에 오를 때는 자발적이었지만,
지금은 오르는 것 밖에 모르기에, 억지로 하고 있다.
이제는 오를 만큼 오른 것 같다.
저기 저 멀리 또 다른 높은 봉우리가 솟아있지만,
이제는 더러워서 더는 못 오르겠다.
이제야, 아래에 있는 바다를 유심히 바라본다.
저 넓은 바다에서 자기만의 길을 개척해 나갔던,
애니메이션 '원피스' 속 '루피'처럼
나만의 길을 만들어 나가야겠다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처와 자식은 어떡하지?
지금부터의 얘기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과감한 도전은 하지 못하지만,
아주 조금씩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려고 하는 40대의 이야기입니다.
자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