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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케테 Feb 16. 2024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아버지는 소망이 있었다. 아들과 딸이 행복하길 바랐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억압했다. 직장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많았어도 꾹 참고 자식들을 위해 직장생활을 열심히 하였고, 웬만하면 칼퇴하여 아들딸과도 충분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자신의 분신이라고 생각하는 아들도 억압했다. 아들이 미숙한 모습을 보이거나, 자신의 방식에 불만을 표시하면 앉혀놓고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갖춰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 가르쳤다. 사회에서 우수한 사람이 되길 바랐고, 이를 위해 물질적인 지원과, 성공마인드를 키워주려고 했다.


딸은 달랐다. 딸은 사회적인 성공보다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다. 딸이 원하는 것은 다 해주려고 했다. 딸불만에는 예민하게 반응했다. 공주처럼 대했다. 


아들은 순종적이었다. 1시간 넘게 계속되는 설교를 귀담아들으려고 했다. 다그치면 다그치는 대로 따라오기도 했다. 성적도 좋았다. '역시 내가 원하는 데로 이뤄지는구나. 더 크게 키우기 위해 더 강하게 몰아세워야겠다.' 그렇게 더 몰아세웠다. 아들 버거워하는 것 같았지만, 따라오고 있었다. 성과는 더욱 커졌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일류 대학교에 가지 못한 자신의 과거를 아들에게 반복시킬 수는 없었다. 아들은 일류대학교에 보내고 싶었다. 우리나라 최고 대학교에 보내고 싶었다. 학업에 장애가 된다고 생각되는 것은 미리 막았다. 아들의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친척들과의 관계, 학업 외 활동은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모두 끊어버렸다.


딸의 불만은 점점 증폭되어 갔다. 이미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었지만, 오빠에게 쏠려 있는 기대까지도 가져가고 싶었다. 딸은 열심히 공부하였다. 하지만, 순종적이며 공부를 매우 잘했던 오빠를 능가할 수는 없었다. 부모님이 오빠에게 쏟는 기대를 자신에게로 가져올 수 없었다. 불만족스러웠다. 불만족스러울수록, 아빠엄마에게 응석을 부렸다. 아버지는 딸의 응석을 모두 받아줬다. 부모가 받아줄수록 딸의 응석은 강해졌다. 모는 딸의 응석이 강해질수록 더욱 노력했다. 아들은 부모에게 응석을 부릴 수 없었다. 처음에는 부모가 아들의 응석을 받아주는 게 아들의 인생에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서였다. 하지만, 딸의 응석이 매우 강해진 이후에는 부모는 딸의 응석을 감당하느라 아들의 응석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종적인 아들은 그런 부모를 보며 응석을 부리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아들은 타인에 대한 기대가 없어지고, 딸은 타인에게 기대는 태도가 강해졌다. 그리고 아들은 딸에게, 딸은 아들에게 불만이 많았다.


아들과 딸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되었다. 뿌듯했다. 아들은 일류대학교에 진학했고, 딸도 좋은 학교에 진학했다. 아들은 대학교 졸업 후에도 남들이 다 인정해 주는 직업을 구했다. 딸은 은행원과 결혼하여 서울에서 그럴듯한 아파트를 구해서 풍족하게 살아갔다. 원하는 결과가 나왔으니 그가 아들에게 가했던 억압이 옳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들과 딸은 훌륭한 모습으로 그에게서 독립하였다.


어느 날 아들이 말했다.


나는 행복하지 않아요. 

이 길은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었어요.


당황스러웠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아들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경제적으로 독립한 아들은 더 이상 순종적이지 않았다. 조금만 화를 내어도 자신에게 순종하였던 모습은 지금의 아들에게는 없었다. 더 이상 갈등을 보기 힘들었던 어머니가 아버지를 말렸다. 아버지는 아들이 떠나간 뒤 미안함이 남았다. 자기가 원하는 아들의 인생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아들이 행복하길 바랐다. 이전까지 있었던 뿌듯함은 미안함으로 변하였다.

 

아들은 이제 아버지의 욕망대로 살고 싶지 않았다. 또한 아버지의 욕망의 뿌리가 된 사회의 욕망대로도 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진정한 욕망대로 살고 싶었다. 지난 오랜 기간 동안 하지 못했던 것을 하고 싶었다. 아버지로부터 억눌려서 진정한 욕망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세상의 욕망을 충족시키며 살아온 지난 모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사회의 욕망을 욕망하며 사회가 원하는 데로 만들어진 겉모습과 달리 텅 비어버린 가슴을 채우고 싶었다. 


그동안의 자신은 속이 빈 채로 팽창하기만 하는 풍선과 같았다. 이미 팽창할 데로 팽창해서 곧 터질 것만 같았다. 위태로웠다. 팽창된 겉모습은 줄이고, 속을 채워 넣어서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 속을 채워 넣기 위해서는 자신의 진정한 욕망을 발견하고, 욕망에 따라 살아야 한다. 나아가 진정한 욕망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을 타인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경험을 쌓아나가야 한다.


그래서 아들은 글을 쓰기로 했다. 자신의 욕망을 표출할 수 있는 수단으로 글쓰기만 한 게 없었다. 자신의 상상을 글을 통해 표현하고, 상상 속에서 등장인물을 만들고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볼 수도 있었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사회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고 싶었다. 자신의 진정한 욕망에만 생각을 두고 이를 글로 옮기는 데에만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싶었다.


그렇게 아들은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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