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케테 Feb 19. 2024

너는 나를,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있을까?

저는 서로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로를 이해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지만, 결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가장 큰 이유는 각자의 감각기관을 공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보는 빨강과 상대가 보는 빨강이 같다는 보장은 아무 곳에도 없습니다.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차 충족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상대를 이해하려고 합니다. 태초부터 인간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번개와 같은 자연현상도 이해하지 못했기에 두려워했죠. 이해하고 나니, 조심하고자 하였고, 과도한 두려움은 없어졌어요. 나아가 이해한 대상을 이용하고자 하였죠. 번개의 실체를 이해하게 되니, 전기로써 이용하고자 했죠. 아마 이게 인간의 가장 궁극적인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은 어떤 것을 이용하고자 하는 존재이다.


인간이 타인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도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일 겁니다. 나아가 타인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용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으로부터 두려움을 느끼며 살아갈 수는 없죠. 그렇기에 우리는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실시하는 것이 곧 교육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회는 구성원을  교육하여 이해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고자 합니다. 이해할 수 있는 상태가 되면, 사회는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이를 이용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진정한 이해가 아닙니다. 온전한 개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통제를 하고자 하는 것이죠. 타인으로부터, 사회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통제받게 된 인간은 이해받고 싶은 욕망으로 타는 듯한 갈증을 느낍니다.


이해하고, 이해받으려는 노력은 통제를 가져오고 통제이해를 하고 싶은 욕구는 해소하지 못하고 갈증을 줍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타인을 이해하기는 불가능하고,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는 '믿음'이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이해할 수 없어도 나 자신을 믿고, 타인을 이해할 수 없어도 타인을 믿는다면 갈증을 온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자신이 믿는 대로 펼쳐집니다. 세상이 긍정적이라서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세상이 부정적이라서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긍정적이라고 믿기에, 긍정적인 세상이 되는 것이고, 세상이 부정적이라고 믿기에, 부정적인 세상이 됩니다.


세상이 긍정적이다, 부정적이다라는 것은 나를 대신하여 그 누구도 정의를 내려줄 수 없습니다.


자신이 보는 세상은 오직 자신만이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세상을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으니까요. 내 세상을 잘 이해하지도 못하는 사람의 말을 들을 이유는 없어요. 자신을 온전히 믿고 나아가는 길만이 진짜의 길이고, 진정한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충만해질 때 비로소 서로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질 것이고, 타인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세상을 온전히 이해할 수도,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도 없는데, 세상에 대한, 타인에 대한 믿음이 자신의 삶의 방향과 태도를 결정할 것입니다.


부디 믿음으로 충만한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