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 콕, 하고 내게 쉼표 찍어줄 사람이 있다는 게
“어, 당연하지. 그래 내리온나.”
전화기 너머 c형이 당연한 걸 물어본다는 식으로 말했다. 별안간 마음이 든든해졌다.
c형을 처음 만난 건 3년 전인 2017년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형과 나를 이어준 건 순전히 우연이다. 언젠가 c형과 나의 인연은 바람 타고 떠돌던 민들레 씨앗 두 개가 공중에서 서로 얽힐 확률로 시작된 것이라 생각한 적 있다. 한 번의 날숨처럼 흩어질 수도 있었던 관계가 단단히 뿌리내린 건 순전히 형 덕이다. c형은 경상도 남자 특유의 무뚝뚝함이 90%인 닭가슴살 같은 사람이지만 나머지 10%의 따뜻함이 너무 압도적이다. 낯가림 심하고 경계심 많은 나 같은 인간도 결국엔 끌릴 수밖에 없다.
형을 만난 건 주로 서울에서다. 형이 결혼할 때, 가게 물건 때문에 서울에 올라왔을 때, 형수와 지인들 만나러 상경했을 때. 그 때마다 형은 내게 연락을 해줬다. c형과 헤어지거나 전화를 끊을 때마다 “조만간 제주도 갈게요”를 깡 뮤비 보듯 반복했고 그 때마다 형은 한시 머뭇거림 없이 “어 그래 내리온나” 했다. 머뭇거린 건 오히려 객을 자처한 나였다. ‘휴가=해외’가 나름의 철칙이었던 터다. 결국 첫 만남 이후 제주도에서 형을 본 건 내가 바다 건너 2번 정도 출장을 갔을 때가 다였다.
휴가를 제주에서 보내기로 한건 코로나 ‘때문’이었다. 물론 4박 길이 휴가가 지난 뒤엔 제주를 휴가지로 한 게 코로나 ‘덕’이 됐지만 적어도 그땐 고백컨대 코로나 때문이었다.
사실 그동안 선뜻 제주행 비행기를 타지 않은 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 첫째, 물가가 비싸다. 둘째, 중국인이 많다. 셋째, 언젠가 사귀었던 여자친구의 고향이다. 셋 중 어느 이유가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행 전 계획을 꼼꼼하게 짜는 편도 아닌데다가 끝내주는 자연 경관보다는 사람 다니는 길목 거니는 걸 더 좋아하는 터라 이번에 제주엘 내려간다면 그냥 c형이 하는 식당에서 소일거리나 하며 보낼 요량이었다. 설거지나 서빙을 하다가 손님이 떠나 시간이 비면 바로 옆 형수가 하는 책방에서 하루종일 책을 뒤적여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졸리거나 머리가 복잡하면 식당 바로 앞에 불턱에서 음악이나 들으며 바다를 보겠다는 게 계획이라면 계획이었다.
c형이 하는 식당은 내가 그동안 가본 어떤 식당과 비교해도 분위기가 독보적이다. 해안도로에 붙어있는 작고 오래된 주택을 리모델링 한 가게다. 내부는 형이 직접 보수하고 인테리어했다. 통나무를 그대로 잘라 천장에 덧대 거칠면서 아늑하다. 테이블도 직접 통나무를 잘라 만들어 엔틱한 분위기가 배가된다. 회반죽 천장에 샹들리에를 걸어놨지만 오래되고 낡아서인지 백열등이 내뿜는 그 느낌이 전체적으로 브라운 톤인 실내 분위기와 퍽 잘 어울린다. 벽에는 형과 형수가 고른 오브제와 와인병들이 가득한데 두 부부의 취향이 고스란히 배어 있어 기분이 좋다. 요컨대 요즘 유행하는 을지로나 합정에 있는 와인바들은 댈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창밖으로 해안도로와 바다가 보인다.
전화로 내 계획(?)을 들은 형은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내리 온나” 했다. 그에게 전화를 걸기도 전에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는 이야기는 따로 하지 않았다. 경쾌한 그의 대답에 더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제주도로의 워킹 홀리데이가 시작됐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