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쉽고 만남은 어려워

연락처인지 데스노트인지

by 성휘

꽂힌 노래가 있다. 반복되는 플레이리스트에 지쳐가던 차 마땅히 새로 발견한 노래도 없고, 그렇다고 집에 쟁여둔 LP를 틀기에는 귀찮음이 극에 달했을 즈음이다.


멜로디도 좋고, 보컬도 좋고, 래핑도 좋은데 딱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다. 제목과 가사다.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렵다는데 도무지 공감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데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별이 쉽다. 매일 함께 같은 교복을 입었던 여드름 쟁이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 대학교 때 함께 막걸리 마시고 어깨동무하고 응원가를 불렀던 낯선 이들은 모두 어떻게 생겼더라. '제대하고도 우리 꼭 연락하고 지내자'던 군대 선후임들은 지금 뭘 하고 살고 있을까. 2000개가 넘는 휴대전화 속 연락처 주인들 중 안녕을 전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나는 그렇게 살고 있다. 어쩌면 휴대전화 속 연락처는 내가 곧 이별하게 될 사람들을 가나다 순으로 나열한 '데스노트'일지도.


반대로 만남은 참 어렵다. 사람 만나는 게 일인 직업인데 새로운 인연을 쌓는 게 근성장만큼 쉽지 않다. 불쑥 튀어나온 인연에게 온전한 나를 드러내고 싶다가도 돌연 상대의 예단과 오해가 걱정돼 뒷걸음친다. '이 정도면 좋은 친구다'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막상 시간과 돈을 내어주기가 아까울 때가 많다. 하물며 어쩔 땐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보다 내가 좋아할 만한 사람을 찾는게 더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소개팅도 귀찮다


이 지경이 되다 보니 몇 안 되는 인연이 끊어질 때마다 전전긍긍한다. 나라는 존재는 500ml 통에 담긴 그릭요거트만큼 소소한데 부대찌개 국자가 와서 크게 한 스푼 나를 덜어내가는 느낌이다. 그렇게 두어 국자만 덜어가도 나는 곧 바닥을 드러낼 것만 같다.


그러다 문득 이별은 쉽고 만남이 어려워지는 것이 삶의 본질이 이날까 하는 행복회로를 돌려본다. 어쩌면 삶은 2000개 넘는 연락처 중에서 진또배기 몇 개를 골라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 안에서 진짜 위로를 받고, 진짜 고독을 씹고, 진짜 유대를 섞어가는 것 말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그런 삶을 살기엔 나는 너무 피곤하다. 지나치는 수많은 옷깃을 붙잡다가는 손톱이 죄다 부러져 남아나질 않을게다. 설령 그 옷깃들을 붙잡아둔다 하더라도 또 얼마나 많은 가면을 썼다 벗었다 해야할까. 생각만해도 고단하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 매일 이별하면서 살아가더라도 조급해하지 않을테다. 이별은 쉽고 만남은 어려우니까. 쉬운 이별을 조급해하기보다 어려운 만남에 감사하고 집중할테다. 매일 이별하며 살더라도 어쩌다 손에 쥐게 될 네잎클로버같은 만남을 소중히하는 그런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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