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젠 연남동에 있는 식당에 갔어. 우리 자주 갔던 그 비건 식당 말야. 갑자기 용기가 나더라. 너 없이도 갈 수 있겠다. 무엇보다 거길 다시 가도 너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겠다. 술이라도 먹은 것처럼 말야.
생각보다 괜찮았어. 문을 여는 순간 테이블 어딘가에 앉아있는 너와 마주할까봐 긴장했지만 말야. 태연하게 우리 늘 먹던 그 메뉴를 포장해서 나왔어. 혼자 처음으로 비행기를 탄 날, 히드로 공항을 빠져나가면서 느꼈던 뿌듯함같은 게 찾아왔어.
지나가는 길에 마침 우리 함께 갔던 레코드샵도 들렀어. 역시나 아무렇지 않았어. 열심히 레코드판을 뒤지는 너의 모습을 상상했는데도 슬프진 않았어.
이젠 겨울이 왔어. 우리 헤어진 여름으로부터 계절 두 개 만큼 시간이 흘렀어. 그래 이쯤이면 괜찮아질 때도 됐지 사실.
그리고 오늘 추워진 날씨에 외출복을 고르다가, 서랍에서 긴팔 옷을 꺼냈어. 하필 그 옷이 입고 싶더라. 두 계절만에.
근데 거기에 너가 있었어. 너의 냄새, 걷어붙인 팔뚝만큼 늘어난 손목.
나는 다시 무너졌어. 지난 여름의 내가 됐어.
이젠 겨울인데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