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감(無感)

나이가 든다는 것

by 성휘

2019년 12월 25일은 내 서른 번째 크리스마스다. 한국 성인 남성 평균 기대 수명이 80세라 가정했을 때 나에게 남은 크리스마스는 이제 50개 남짓일 것이다. 이상하게도 10번째 크리스마스보다 25번째 크리스마스가 더 시시했던 것 같고, 30번째 크리스마스는 더 특별할 게 없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캐롤을 들어도 더 이상 설렐 것도 없다.

이윽고 나이를 먹는다는 건 곧 주변 상황에 무감각해지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른다. 매년 10월 25일이면 찾아오는 내 생일이 별게 아닌 날이 된 지 오래다. 10번째 생일에는 동네 맥도날드를 빌려 이름만 아는 친구들까지 죄다 불러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는데 말이다.

인생에서 남은 시간이 점차 줄어든다는 건 어쩌면 그만큼 뭉툭해졌다는 말이다. 우리 모두 갓 깎은 연필처럼 첨단(尖端)으로 태어났지만 시간의 풍파에 깎이고 문드러져 연필 뒤쪽 지우개처럼 무뎌지는 거다.

그래서인지 작은 변화에도 쉽게 감탄하는 사람을 우린 ‘철없다’고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사소한 이벤트에 “호에에!”하며 놀라는 사람을 어른스럽다고 말할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떨어지는 낙엽에도 “꺄르르” 웃는 건 아줌마가 아닌 사춘기 소녀들이지 않은가.

철든 사람은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봐도 신나 하지 않는다. 엊그제 차마 젊었던 부모의 귀밑 서리가 늘어나는 모습을 봐도 덜 측은하다. 땅따먹기 하듯 하늘을 가르는 비행운은 비행기가 지나간 길이란 걸 알게 된 순간 더 신기할 일도 없다. 겨울철 하얀 입김이 수증기의 ‘액화’ 때문이란 걸 배운 초등학교 과학시간 이후로는 “호~ 호~”하며 걷지 않게 되는 것과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리 노력해도 더 이상 나아지지 않는 일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때때로 예상 못한 인연과 마주칠 때도, 너무나 갑작스러운 나머지 저릿한 결별을 할 때도 그닥 놀라지 않을 수 있게 된다.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일 거다. 매일 뜨는 해가 매일 신기하고,나뭇잎이 떨어질 때마다 꺄르르 웃어야 한다면 신경쇠약에 걸릴 수밖에 없다. 매해 생일마다 맥도날드를 빌려 큰 파티를 해야 하는 강박에 시달린다면 인생이 얼마나 피곤할까. 어차피 안 될 일에 돈키호테 마냥 항상 “도전!”을 외치는 사람은 성공신화를 써 내려갈 확률보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세상 물정 모른다”는 냉소를 살 가능성이 훨씬 크고, 심하게 망가진 나머지 이제는 놓아야 하는 인연임에도 이를 부정하고 집착하는 사람은 일상을 상실한 채 더 큰 좌절을 맛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나는 가능한 오래 철없는 사람이고 싶다. 예상치도 못한 이로부터의 카카오톡 알림에 설레고 스쳐가는 사람들을 아쉬워할 줄 아는. 도전의 문턱에서 냉소 대신 열의에 가득 찬 나머지 작년까지 한 개도 하지 못했던 턱걸이를 이제는 10개나 할 수 있게 되는. 터키 해변에 머리를 처박고 죽은 시리아 꼬마 ‘쿠르디’를 생각하면 찰나나마 측은해할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가진. 그리고 복구 불가능한 인연에도 포기 않고 오히려 온 마음을 써보는.


그렇기만 하다면 내게 남은 크리스마스가 50개에서 45개쯤으로 줄어든다고 해도 크게 싫지만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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