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치아 lucia Sep 26. 2023

9월, 가을맞이

시작은 잇몸병이었다.

나는 생리할 때쯤 되면 잇몸이 자주 붓는다. 그래도 근래에 치약을 바꾼 뒤로는 1년 가까이 잇몸이 붓지 않았었는데, 오랜만에 잇몸병이 시작되었다.

입천장이 땡땡하게 붓다가 헐고, 이내 피가 난다. 식사하고 칫솔질하는 일상에 태클이 걸려 불편하고 아프다. 며칠 뒤 생리가 시작되었다.


그러더니 코가 킁킁 예민해졌다. 나는 대학생 때부터 근 20년간 알레르기 비염을 달고 산다. 2~3개월에 한 번쯤, 어떨 때는 연달아 매달, 이비인후과에서 독한 항알레르기약과 스테로이드제를 받아먹어야 흐르는 코를 멈추게 할 수 있었다. 코로나 이후로 마스크착용을 생활화하며 근 2년 넘게 지냈더니, 병원 약 먹지 않고 약국에서 지르텍이나 액티피드 정도 사 먹어도 견딜만했다. 최근에는 거의 알레르기를 느껴보지 못했다. 그런데, 아주 급성으로 나빠지는 알레르기 비염이 찾아왔다. 하루 만에 편도까지 부어 이비인후과에서 항생제 처방받고 링거도 맞고 왔다. 체감상 코로나 걸렸을 때보다 더 힘들었다. 편도가 심하게 부어 목 근육이 다 뻣뻣한 느낌이었다.


그러더니, 이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몇 달 전부터 찬물에 이가 좀 유난히 시리더니, 찬물 아니고 실온에 둔 물에도 이가 시렸다. 그러더니 가만히 있어도 이가 시리고, 가끔 쑤시기도 했다. 괜찮아지고 심해지고를 반복했었는데, 이번엔 머리 정수리부터 턱밑까지 얼얼하도록 치통이 심했다. 세상 그렇게 치통이 와본 적은 또 처음이었다. 주말이 껴서 병원에 가진 못하고, 타이레놀과 이부프로펜계열의 진통제를 섞어먹으며 진통제발로 견뎠다. 월요일이 되어 치과에 가보니 급성치수염이란다. 치은염 치주염은 들어봤는데, 치수염은 뭐지? 치아 신경에 염증이 난 거라 한다. 난 충치도 없고 치아에 금 간 것도 없는데? 그래도 치수염은 걸릴 수 있다고 하네. 아. 온갖 염증들이 날 괴롭히는구나.

치수염은 신경치료밖에 방법이 없는데, 신경치료는 멀쩡한 이를 뚫는, 제법 큰 치료이니, 무조건 시작하기보다는 경과를 좀 보고 진행하자고 의사가 소견을 밝혔다. 진정제를 먹고, 바르고, 소독을 하고, 더러는 신경치료까지 안 가고 안정되는 경우도 있느니, 일주일정도 지켜보자고 했다. 집에 와서 급성치수염에 대해 네이버, 유튜브에 검색해 보았다. 출산의 고통에 버금가는 통증을 가진 질병 3가지 중에 급성치수염이 포함되어 있었다. 산고를 겪어보진 못했으나, 어쨌든 무지하게 아픈 고통인 것은 맞구나.  

   

그 와중에 엄마의 3주기를 지냈다.

둘째 언니는 엄마 기일에 일하기 싫다며 연차를 내었고, 남편도 휴가를 내어 내내 함께 있었다. 기일미사를 함께 드리고, 맛있는 점심을 먹고, 맛있게 차도 마셨다. 날씨가 아주 맑았다. 낮 기온은 아직 30도를 웃돌고 있었지만, 제법, 바람이 시원해졌다.


주말에는 남동생 내외와 큰언니까지 4남매 모두 함께 엄마의 추모관에 다녀왔다. 얼마 전에 큰언니가 이사를 했기에, 집들이도 하고, 고깃집에서 오랜만에 다들 배부르게 고기를 먹었다. 물론 나는 이가 아파서 잘 못 먹었지만, 남편이 내 몫까지 잘 챙겨 먹었다.    

 

아플 때면 엄마생각이 더 많이 난다. 편도가 부어 목이 아파 잠을 못 자고, 치통으로 고생해 잠이 오지 않던 그 불면의 밤 동안, 나는 엄마의 손길이 그리웠다. 배가 아프다 하면 배를 쓸어주고, 열이나 밤새 끙끙 앓을 때면 이마에 지긋이 느껴지던 엄마의 손, 그 손길이 나를 낫게 하고 나를 일으켰다는 것을, 절절히 느낀다. 엄마는 죽음에 이르는 그 순간까지 얼마나 아팠을까. 출산의 고통에 버금가는 통증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모르핀을 맞으면서도 엄마는 신음했다. 그 모르핀 덕에 숨은 더 가빠진다. 그 고통은 어떤 고통이었을까.     


잇몸병으로 시작해, 3주쯤 지나니, 얼추 회복이 되었다. 4주가 지나, 오늘, 치과에 한번 더 다녀왔다. 안정된 것을 확인하고 추석인사 하고 병원을 나왔다. 4주가 지났으니, 다시 생리 때가 되었는데, 아직까진 잇몸병의 기미가 없다. 부디, 별 탈 없이 잘 넘기고, 추석동안 맛있는 거 많이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

나 아팠던 동안, 엄마도 함께 있었지?

그래도, 엄마 덕에, 이만큼만 하고 잘 회복한 거 같아.

엄마의 기도 덕에, 나는 견딜만한 고통까지만 겪고, 이렇게 일어난 거 같아. 고마워.   

  

엄마가 하느님 곁으로 간지, 벌써 3년,

나는 아직도 엄마의 마지막이 너무 생생한데, 엄마의 고통이 너무너무 느껴지는데,

이제 그런 거 다 잊어야겠지?

엄마는 지금 천상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있을 테니까.

지상에서 그토록 고생스럽게 아팠던 것은 다 잊고, 우리, 행복했던 것만 기억해야지. 그치?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냄새 맡고 싶은 나의 엄마,

나는 이제 엄마의 기일을 슬퍼하지 않고 축하할게.

엄마가 하늘나라 입성한 날, 고통 없고 아픔 없는 곳으로 떠난 영광스러운 날, 기뻐하며 경배할게.

사랑해. 엄마.     



작가의 이전글 Org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