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꺽마 /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9월, 온갖 염증으로 시작된 나의 가을맞이는, 9월 말이 되어가며 안정이 되는 듯했지만, 10월, 나는 새로운 염증을 맞이했다. 이번엔 방광염이었다.
찾아보니 나는 11년 전쯤, 그러니까 남편과의 결혼식을 준비하던 예비신부시절, 이렇게 찬바람이 불던 환절기 즈음에, 방광염을 앓았었다. 덕분에, 예민 떨며 부산스럽게 몸과 마음을 움직이던 예비신부는 한걸음 멈춰 서고 두 걸음 쉬어가며, 몸을 챙기는 시간을 가졌었다. 그 이후로는 방광염을 잊고 살았었는데, 40살이 넘어서 방광염이 다시 찾아왔다.
여느 때처럼 생리가 시작될 무렵, 아랫배가 묵직해왔다. 생리 때가 되어서 그렇겠지. 하지만 매일매일 더 묵직했고, 빈뇨, 혈뇨, 배뇨통이 함께 왔다. 이것은 분명 방광염이다 느낌이 왔고, 생리가 끝나자마자 병원에 갔다. 염증수치가 매우 높았고, 힘드셨겠다는 위로의 말도 들었다. 항생제와 항진균제까지 처방받아 5일간 복용했다. 다행히 약발은 잘 받았고, 염증수치는 떨어졌다. 따듯하게 몸 관리하고 스트레스받지 않게 생활하라는 당부를 듣고 진료를 마쳤다.
지난여름의 한가운데쯤, 나는 결심한 것이 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운전면허를 따겠노라. 나도 차 뒷유리창에 초보운전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동네 마트를 가고 남편 출퇴근을 시켜주리라 다짐했다.
그래. 나는 운전면허가 없다. 20대에 도전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나는 유난히 겁이 많고, 길치 방향치이며, 기계를 잘 다루지 못하고, 자전거 타는 것도 번번이 실패할 만큼 운동신경도 부족했다. 그때는 당연히 차도 없었고, 운전면허를 따봤자 장롱면허가 될 것이 뻔하니, 운전면허를 따고 바로 운전을 할 수 있을 때, 그때 면허를 따야겠다 생각했었다. 그렇게 미루다 30대가 되었고, 결혼을 했고, 장모님이 인정한 베스트드라이버 남편과 살다 보니, 그다지 내가 직접 운전을 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40살이 넘어버렸다.
3년 전 엄마를 하늘로 보내고, 작년 11월 아빠의 장례까지 치르면서, 그 밤과 그 새벽에, 졸린 눈을 하고 퉁퉁 부은 얼굴로 운전대를 잡는 남편을 보며, 참 많이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가족의 장례 때 피곤하고 고단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나도 함께 운전을 한다면, 덜 미안하고 고단함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무더웠던 지난여름, 폭염이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운전면허학원으로 달려가리라 결심했었다. 그러나, 9월이 시작되자마자 날 맞이한 온갖 염증들은, 내 몸뚱이를 우리 집 소파에 붙잡아 두었다. 10월 초, 방광염까지 보내버리고, 한글날 연휴를 지내고, 몸조리를 마친 뒤, 나는 드디어 운전면허학원으로 달려갔다.
학원등록을 하고, 학과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모의고사를 10개쯤 풀고, 학과시험을 응시하고, 96점으로 합격했다. 장내기능교육은 4시간이 필수인데, 갈길 모르고 헤매며 도무지 안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핸들과 오른 다리 때문에, 4시간 교육을 추가하여 수강했다. 총 8시간의 교육을 듣고, 장내기능시험을 응시하여, 90점으로 합격했다. 이제 도로주행만이 남았다.
장내기능교육을 수강하면서, 강사가 말했다. ‘왜 다 늦게 면허를 따느냐, 20대에 안 따고 뭐 했냐, 감각이나 대처능력이 20대와는 달라서 어려움이 있을 거다. 잘 집중해라.’라고 말했다. 기분이 좀 상하기도 했지만, 따끔한 조언으로 듣고 더 집중했다. 추가교육도 듣고, 유튜브도 많이 시청하며 애를 썼다. 그런데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가 20대에 운전면허 취득했으면, 그때는 수월했을까? 과연, 쉬웠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나는 지금보다 20대에 더 둔했다. 그때는 정말이지, 밤길에 바람에 날라 가는 검은 비닐봉지에도 소스라치게 놀랄 만큼 겁이 많았다. 그때는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절이라, 길치 방향치에게 운전은 참 어려운 일이었으리라. 그런 내가 20대에 감각이나 대처능력이 과연 뛰어났을까. 운동신경이 좋았을까. 잘 모르겠다. 그런 아쉬움은 접고, 지금에 집중하면 된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돈 아깝지 않게 열심히 공부하고, 안전하게 운전하면 될 일이다. 20대, 30대, 40대... 60대, 그런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유난히 하늘이 파랗고 바람이 좋은 날, 혹은, 열어둔 창문으로 꽃향기가 들어오는 어느 날, 단풍잎이 아름답게 물든 또 어느 날, 나는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나 혼자, 엄마가 있는 추모관에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물론 엄마는 나와 함께 언제나 어디에나 있지만, 나의 집에도 나의 성당에도 내가 가는 이곳저곳 어디에나 엄마는 있지만, 그래도, 어느 날 문득, 그렇게 엄마를 보러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엄마의 유골함은 경기도 화성에 있는 천주교 추모관에 모셔두었다. 대중교통으로 다녀오기엔 쉽지 않은 곳이다. 나는 꼭 올해 안에 운전면허를 취득해서, 엄마에게 다녀오리라. 어느 겨울날, 코끝이 시큰하도록 추위가 몰려오고, 바람이 차가운 어느 날, 나는 엄마를 만나러 다녀올 것이다. 꼭 그러고 싶다.
마지막 도로주행까지 파이팅!!! 안전운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