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돌아왔다.
11월 초, 남편의 긴 출장이 시작되었다. 20일쯤 객지에서 일하고 집에 와 사흘 쉬고, 또 20일쯤 일하고 집에 와 이틀 쉰 뒤, 10일쯤 일하고 출장을 마무리했다. 이제 집에서 사무실로 평상시처럼 출퇴근을 한다.
남편은 상반기에는 가끔 출장을 가고, 하반기에는 자주 출장을 가는 직업인데, 그래도 이렇게 오랫동안 객지생활을 한 경우는 결혼하고 처음인 것 같다. 덕분에 주말부부 기분도 내보고, 연애할 때 생각도 나고, 애틋해지고 안쓰러워지고, 그랬다.
11월 초, 남편이 출장을 떠날 때는 가을날씨였다. 한주 한주 시간이 지난 뒤, 나는 남편의 겨울잠바와 기모바지, 두꺼운 양말들을 챙겨서 출장지 공주로 내려갔다. 바쁜 일과 중이라 주말도 없이 내내 일하는 남편과 밥 한 끼 겨우 먹고, 차 한잔 후다닥 마신 뒤, 남편은 이내 다시 일하러 가고 나는 서울로 올라왔다. 가는 시간을 아쉬워하며 내내 얼굴 마주 보고, 헤어질 때는 버스 창문사이로 서로 손 흔들며 짧은 이별을 나누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혼자 살아 본 경험이 없었다. 결혼 전에는 엄마와 살았고, 독립해서 나 혼자 살아본 적은 없었다. 남편의 긴 출장 덕분에 나이 마흔이 넘어 싱글라이프를 즐겨보았다. 물론 외롭고 쓸쓸하고 적적하고, 이루 말할수 없었지만, 온전히 하루 24시간을 나 혼자 지내며 이 생각 저 생각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나는 유난히 겁이 많은 편이다. 어렸을 적부터 그랬는데, 특히 저녁이 되면서 창밖이 어두워지면 샤워하는 것이 무섭고, 밤에 잠들기 전까지 오만가지 무서운 상상들이 머릿속에서 활개를 친다. 그래서 현관문에는 번호키 말고 열쇠키도 달고, 걸쇠도 달아둔다. 외출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욕실문 세탁실문 다 열어보고 도둑놈이 없는지 두눈으로 직접 확인한다. 장롱도 하나씩 다 열어보고 세탁기 건조기 속에 숨어있지는 않은지 침대 밑에는 없는지 샅샅이 살핀다. 하다 못해 도저히 숨을 공간이 안 나오는 신발장까지 모두 열어본다. 그래야지만 그나마 안심이 된다. 그런데도 샤워를 할 때면 무서움이 밀려오지만, ‘다 살펴봤고, 절대 도둑놈이 숨어 있을 수 없으니 제발 쓸데없는 생각 말고 얼른 샤워나 하자.’ 나 스스로에게 수없이 말하며 샤워에 집중하려고 애쓴다.
생각해 보면 결혼 후, 남편이 출장을 떠날 때면, 나는 엄마 집에 가서 잠을 잤다. 엄마의 윗집에 살았으니 남편이 출장을 가도 무섭지도 외롭지도 않았다. 하지만, 한 해 두 해 시간이 지나면서, 언제까지 내가 남편 없다고 무서워서 혼자 잠도 못 잘 것인가. 싶어 혼자 자보려고 노력했다. 해보니 할만했다. 무서운 생각이 들어도, 엄마 윗집에 살고 있으니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고, 정말로 무시무시한 강도가 나타나도 엄마가 아랫집에 있는데 무엇이 두려우랴. 그런 마음으로 혼자인 시간을 지내보았다. 그러다 엄마 윗집에서 이사를 나와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 터를 잡고 난 뒤, 나는 내가 아무리 혼자인 시간을 지내보았어도, 그건 혼자인 게 아니었구나. 새삼 깨달았다. 혼자였어도 엄마와 함께 있었고, 엄마 그늘아래서 무섭지 않게 살았다는 걸 절감했다.
그래도 남편이 출장을 간 뒤 하루 이틀 보름 한 달이 넘어가면서, 조금씩 적응해 갔다. 하지만 여전히, 외출 뒤 온갖 문이란 문은 다 열어보는 습관은 변함이 없었다. 그래도 무서운 생각을 조금 덜 하게 되었고, 내가 내 집에서 왜 마음 편히 샤워조차 못하나 싶어 용기를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야 나는, 40살이 넘고, 부와 모를 모두 떠나보내고서야, 혼자서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씻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결연한 다짐을 조금씩 채워 나가고 있다.
부끄럽기 짝이 없다. 나는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냈고 편모슬하에서 우여곡절 많이 겪으며 성장했고 어른이 되었는데, 그래서 나는 내가 귀하게 크지도 않았고, 곱게 자라지도 못했다고 늘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출장 간 남편 덕에 두 달을 혼자 지내보니, 나는 겁 많고, 혼자서 못하는 것도 많으며, 겉으로만 똑똑한 척 씩씩한 척 어른인 척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충분히 곱게 자랐고, 편모슬하였어도 안전히 성장했으며, 다정한 남편 덕에 늘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새삼 감사히 느꼈다.
남편은 일을 잘 마치고 돌아왔다. 내가 하는 무서운 상상 중에는 이런 것들도 있었다. 주말도 없이 일하고 밤늦게 까지 일하고, 밤을 꼴딱 새우고 일한 날도 있을 때는, 남편이 과로하여 샤워하다 쓰러지는 것은 아닌지, 잠들었다가 아침에 못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졸음운전하다 교통사고라도 나는 것은 아닌지, 이런 상상들도 수없이 했다. 하지만 남편은 안전히, 건강히, 감기 한번 걸리지 않고 무사히, 집에 잘 돌아왔다. 이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어마어마하게 행복한 일인지, 긴 출장 덕에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연말이다. 2025년이 다 갔다. 우리는 무사히 살아내었고, 안전히 집에 돌아왔으며, 나의 가족들은 여전히 내 곁에 있다. 아침에 현관문을 나선 나의 가족이, 그 현관문을 열고 기쁘게 귀가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서로가 서로에게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할 수 있길 바래본다.
새해를 기쁘게 맞이하자. 대박을 기원하고, 로또 1등을 바래 보는 것도 좋지만,
늘 그래왔듯, 2026년에도 건강하길, 안전하길, 무탈하길, 편안하길, 기도해본다.
2026년 환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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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참사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기억합니다.
무안공항 참사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올해도 근무 중에 목숨을 잃은 수많은 노동자들과 유가족들을 기억합니다.
새해에는 너무 많은 죽음이 우리 앞에 들이닥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