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대 시절부터 추위를 많이 타고 손발이 차가웠다.
근데 생각해 보면 내가 20대이던 시절,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2000년대에는 따듯한 방한템이 지금처럼 다양하고 성능이 좋지 못했다. 그때의 방한아이템은 털부츠(UGG나 베어파우 같은 브랜드가 나오기 시작했다)와 내복정도였다. 지금도 유명한 유니클로의 히트텍은 2000년대 후반에서 2010년대 초반이 되어서야 나왔었던 것 같다. 지금처럼 오리털/거위털 점퍼, 롱패딩은 흔하지도 않았고, 기모가 들어있는 바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한겨울 영하 10도에도 구두에 검정스타킹, 무릎길이 치마를 입었고, 외투는 모직코트를 입었다. 너무 추울 땐 스타킹을 두 개 신기도 했고, 목도리와 장갑으로 무장하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의 흔한 패딩조끼도 그 시절엔 없었다. 또한 직장 생활하면서 아무리 날씨가 춥고 눈이 와도, 운동화나 단화류의 신발은 흔한 출퇴근 복장이 아니었다. 그러니 추위를 많이 타는 것이 당연했던 것 같다.
근데 유난히 너무 춥다 느껴지던 어느 날, 퇴근길 횡단보도에 서있는데 몸이 덜덜 떨렸다. 추위와 칼바람에 손발이 떨리고 몸이 떨리는 건 흔한 일인데, 그날은 뭐라 표현해야 할까. 내장까지 떨리는 느낌이었다. 심장이 쿵쿵거리는 느낌, 오장육부가 다 시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날이었다. 귀가하여 엄마에게 너무 춥다 얘기하며 ‘엄마, 내장이 덜덜 떨리는 것 같아. 오장육부가 다 시려.’라고 말했더니, 엄마가 무언가 결심하신 듯 단호히 말씀하셨다. ‘너, 구절초 좀 먹어야겠다.’
다음날 귀가하니 엄마는 경동시장에서 사 온 한약재를 다듬고 계셨다. 구절초만 먹으면 입이 쓸 테니 함께 먹을 약재도 몇 가지 사 오셨다. 그걸 큰 냄비에 넣고 푹 끓이는 건지 제조과정은 잘 모르겠으나, 며칠 뒤, 씁쓸한 한약 같은 구절초 달인 물이 아침상에 함께 올라왔다. 아침저녁으로 꾸준히 한 달쯤 먹으니, 정말 약효가 있는 것인지, 횡단보도 앞에서 웅크리고 바들바들 떨던 나의 어깨가 조금씩 펴졌다. 그 말을 엄마에게 신나하며 전하니, 엄마는 다음날 경동시장에서 또 구절초와 약재들을 한 보따리 사와 또 푹푹 끓여서 나에게 내어 주셨다. 그 덕에 그 겨울을 따듯하게 났던 기억이 있다.
몇 달 전, 동네 유기농마트 한살림에 가보니, 새로운 물건이 들어와 있었다. 구절초차였다. 한동안 오래 잊고 있었는데, 엄마가 달여 준 구절초가 생각났다. 냉큼 사서 맛을 보니 그때 그 맛이었다. 예전엔 엄마가 다른 약재를 섞었음에도 무척 쓴 맛이었는데, 이제 내가 나이가 든 것인지, 쓰다기보다는 고소하고 쌉싸름했다. 충분히 먹을만했고, 개별포장 되어있어 먹기도 간편했다. 반가움에 한 팩을 더 사서 틈틈이 먹었다.
나는 기관지 쪽이 약한 편이다. 대학생 때부터 비염이 시작되어 성인이 되어서도 늘 비염을 달고 살았다. 그런데, 결혼 후, 30대가 되면서 알레르기비염은 좀 발병빈도가 적어지는데, 마른기침이 나기 시작했다. 비염이 올라오면 목이 붓고, 그러다 코가 좀 잠잠해지면 마른기침으로 한 달씩 가기도 했다. 근데 이 마른기침이 정말 무서운 게, 도무지 떨어지지를 않는다. 밤이 되면 기침이 더 심해져 불면의 날이 이어졌고, 기침을 하다가 담이 걸려 옆구리와 뱃가죽이 다 아플 지경이 되었다. 이비인후과에서 주는 항생제는 도무지 약발은 받지 않고 배만 아프고 설사만 할 뿐이었다. 그때 지인이 생강을 꾸준히 먹어보라 권하였다. 직접 시장에서 생강을 사 와 설탕을 넣고 푹 재서 생강청을 만들어먹었다. 근데 이 생강이, 정말 내 입맛이 아니었다. 쓴 한약은 먹겠는데, 도무지 맵고 알싸한 생강맛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 생강을 말려서 분말로 만든 제품을 먹어보기도 하고, 생강을 통째로 넣고 만든 생강진액도 먹어보다가, 한살림을 알게 되면서 여기 제품에 정착했다. 차로 타 마시지 않고, 나는 밥숟가락으로 한 스푼 떠 입에 넣고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생강의 맵고 아린 맛이 입안에 남지 않아 깔끔하다. 11월이 되어 김장철이 되면 한살림에 생강청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때부터 봄이 올 때까지 매일 한 스푼씩 꾸준히 먹는다. 마른기침이 와도 수월히 넘길 수 있도록 나의 기관지에 미리미리 생강칠을 해놓는 느낌이랄까.
그 외 도라지청과 배도라지청도 정말 애정하는 겨울 아이템이다. 배도라지청은 여름을 제외한 나머지 날들 동안 수시로 한티스푼씩 자주 먹는다. 찬바람 불기 시작하고 봄에 미세먼지나 황사가 심해지면 거의 매일 먹기도 한다. 도라지청은 가격이 좀 비싼 편이라 가을겨울에만 아껴서 먹는다. 이것이 나의 월동越冬=겨울나기 준비이다.
나이를 먹고, 40대가 되고, 부모를 여의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 몸을 온전히 나 스스로 책임지고 감당해 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물론 남편이 있고, 형제자매가 있지만, 아픈 몸은 서로에게 짐이 되기 마련이다. 엄동설한 추위에 몸을 덜덜 떨며 귀가해도 구절초차를 내어 주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손을 덥석 잡아줄 엄마는, 이제 없다. 내 몸뚱이가, 나와 함께 노후를 살아낼 나의 반려자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면, 서로가 든든히 버팀목이 되어 의지 될 수 있으려면, 나 스스로, 나를, 잘, 챙겨야 한다.
바람이 쌩쌩 불어도, 호호 추워도 난 씩씩하니까 괜찮다는 동요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씩씩해도, 노화가 시작되는 40대를 맞이했으니, 롱패딩과 기모바지로 바람을 피하고, 구절초와 생강, 도라지로 내실을 챙기며 이 겨울을 준비한다. 추운 겨울날 엄마와 팔짱 끼고 걸으면, 엄마는 내 손을 꼭 쥐고 본인의 패딩점퍼 주머니에 쑥 끌어당겨 넣어주셨다. 남편도 늘 화들짝 놀라 하는 나의 찬 손을 엄마는 단 한 번도 타박하지 않으셨고 더욱더 깊이 본인 주머니에 넣으셨다. 엄마의 보드라운 손과 따듯한 온기는, 이제 내 추억 속에만 존재한다. 하지만 엄마가 그토록 아껴주셨던 엄마의 딸에게 나 스스로 엄마가 되어, 이 겨울을 잘 살아낼 수 있도록 나 자신을 잘 돌봐야겠다.
입동立冬이 지난 지 한참이고, 이제 소설小說이 다가온다.
올 겨울, 모두 따듯하게 살아내시길.
서로가 서로에게 든든히 버텨줌에 감사할 수 있는 건강한 계절이 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