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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Jan 17. 2022

또다시 사랑에 빠지다

한국어 수업, 학기가 시작되면 나는 또다시 설렌다

  작은 수술을 계획하고 있었다. 정규직도 아니고 아플 때 당당하게 쓸 수 있는 병가와 같은 휴가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수술 후 한 달 이상의 안정기가 필요하다는 말에 한 학기를 쉬어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수업을 수강하는 학생수가 줄어드는 이 상황에서 한 학기를 쉰다고 했을 때 다시 복귀할 수 있을지 보장도 없었지만 나는 내 삶의 질을 위해 수술을 결정했고 한 학기를 쉬었지만 다행히 다시 복귀할 수 있었다.




  한 학기(약 3개월)를 쉬는 동안 몇 가지 변화 중에 가장 큰 변화는 한국어 수업을 수강하는 학생의 국적이 미얀마 학생들로 크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미얀마... 아직 수업에서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나라, 나에겐 낯선 나라였다. 최근 뉴스에서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로 국민들의 피해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 내가 아는 전부였다.

수술 때문에 3개월을 쉬고 온 나는 다시 한국어 수업에 열정을 쏟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대부분 수업의 경우 몇 개의 국적이 혼합되어 있는 반을 담당하게 되는데 이번 학기에 우리 반은 미얀마 학생들로만 구성된 반을 담당하게 되었다. 본국에서 크고 작은 상처를 경험했을 학생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좀 더 따뜻한 마음이 전달되는 수업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열정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쿠데타로 어수선한 본국의 상황을 잘 알고 유학길에 오른 학생들의 열정이 부족할 리가 없었다. 우리 반은 한글 자모부터 배우는 1급(한국어 수업 초급)이었는데 학생들은 이미 본국에서 자모를 스스로 다 익힌 상태였고 간단한 기초 회화도 이미 알고 있는 상태로 보통 2급을 수업하는 반에서 만날 수 있는 학습 상태였다.

비자 문제로 다른 학생들과 달리 2주일 뒤에 한국에 입국한 학생이 있었다. 입국해서 2주일 동안 작은 호텔에서 자가격리를 하게 되었는데 고향을 떠나면서 숙제할 공책을 두고 왔다며 교재의 여백에 숙제한 것을 보고 그 열의에 놀란 적이 있었다.

학생들 대부분이 매일 제출해야 하는 숙제도 지금까지 내가 수업한 숙제 상태 중에 가장 성실했고 이런 학생들의 중간, 기말 시험의 성적은 당연히 내가 경험한 학생들의 성적 중 최고 성적을 경신했다.


학생들이 숙제를 제출하면 나는 이름 옆에 예쁜 스티커를 붙여주고 있다.


 "한국의 1980년대가 이러했을까?"

  학생들은 너무 순수했다. "선생님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는 그 시절, 그때를 떠올릴 만큼 우리 반 학생들은 가르치는 선생님에 대한 예의를 지키며 그들의 방법으로 감사함을 표했다.

수업 시간에 고향 음식 이야기가 나오면 짧은 한국어 실력으로 최선을 다해 설명해 주려고 노력했고 나에게 그 음식의 맛을 꼭 보여주고 싶기라도 한 듯 만들어 드리겠다는 약속을 한다.

학생들은 대부분 작은 고시원에서 공용 부엌을 사용하며 부족한 생활비로 끼니를 때우고 있을 것이 뻔하다. 그런 학생들에게 선생님에게 선물할 고향 음식을 만들게 하는 그 큰 부담은 절대로 주고 싶지 않은 것이 모든 선생님들의 마음일 것이다. 그럴 때면 나는 학생들에게 한국에서는 선생님께 무엇을 선물하면 안 되는 규정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그 부담을 차단하곤 한다. 하지만 이 학생들에게 그 규정은 자신들이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과는 무관하다고 생각이라도 한 듯 얼마 후, 학생들은 함께 만들었다며 고향 음식을 내민다.

너무도 순수하고 기쁜 표정으로.

 

내 어릴 적 추억과 다시 만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스승의 날이었다. 저마다 부모님이 챙겨주신 선물을 가지고 온 우리 반 아이들 틈에 내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주머니에 있는 동전으로 문구점에 가서 까만색 볼펜을 사서 선생님께 선물로 드리고 온 기억이 있다. 그때의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은 연세가 많으신 이셨는데 지금도 내 기억 속에는 나에게 늘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 주셨던 고마우신 선생님이셨다. 그 이후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내 용돈으로 스승의 날 선물을 산 기억이 없다.


  어느 학기보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종강하는 날, 학생들은 미얀마 본국의 방식으로 선생님과 마지막 인사를 하겠다며 나를 의자에 앉게 했다. 그리고 이 추운 겨울, 차가운 강의실 바닥에 앉아 합장하며 절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순간 너무 놀라 학생들을 일으켜 세웠지만 학생들은 괜찮다며 자신들의 인사를 끝까지 마치고서야 일어났다. 이미 학생들이 준비한 인사 방법을 굳이 거부할 필요가 없겠다는 마음이 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코 묻은 돈으로 산 것이 틀림없는 내 볼펜 선물을 받아주신 내 어린 시절, 선생님의 마음이 그러하셨으리라.


  사실, 이번 학기에는 학생들이 정이 너무 많아서 그 정을 어느 정도 어떻게 차단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던 학기였다. 학생들의 정을 모두 받아주고 가깝게 지냈을 때 부작용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부작용이 학생들에게는 장, 단점이 되기도 한다. 매 학기가 끝날 때 내가 그 경계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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