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ㅇ씨, 일어나 아침 먹읍시다!”
몇 달 전부터 아침마다 벌어지는 우리 집 풍경이다. 요즘 아침상 차리는 사람은 남편이다. 36년 동안 직장생활을 할 때 남편은 유독 아침밥에 집착했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늘 이른 새벽에 아침을 차려 주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비몽사몽 상태로 뒤척이다가 남편이 버럭 하면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서 주방으로 달려가곤 했었다. 고지식한 조선시대 남편은 내가 본인보다 먼저 일어나서 아침상을 차리는 게 정석이라고 믿던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가야 치열한 전투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에 그렇게 집착했나보다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놈의 아침밥’ 때문에 버럭 소리를 지를 때는 섭섭한 마음은 물론이거니와 여린 마음에 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었다.
드르륵드르륵 커피콩을 가는 소리가 들린다. ‘커피 가루 흘리지 않고 잘 옮겨 담았을까?’ 궁금하지만 꾹 참는다. 그다음 냉장고 문을 열고 딸까닥 달걀 통 뚜껑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 냉장고에서 달걀부터 꺼낸 다음 한 손에 들고 냄비를 꺼내니 자주 사고가 발생한다. 가끔 “아이코, 이런!” 혼잣말할 때는 달걀 하나를 놓쳐서 깨뜨렸다는 신호이다. 그래도 난 모른 척 참아야 한다.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기겠지.’라는 믿음으로. 삐뚤빼뚤, 우둘투둘하게 사과를 깎는 소리도 들린다. 드디어 아침상이 차려졌다. 내가 차려 줄 때는 밥과 국이었지만 이제는 식단이 바뀌었다. 방금 내려 향이 좋은 커피 두 잔과 제각각 모양의 채소들, 삶은 달걀, 모닝빵 2개, 나름 예쁘게 색을 맞춰 정성껏 접시에 담으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음, 이 정도면 봐 줄 만하네.’라는 생각으로 흐뭇하게 커피 한 모금을 마셔본다. 그다음 고음의 솔 톤으로 과장되게 말한다.
“음, 커피 너무 맛있다!”
“진짜?, 달걀 삶는 시간을 좀 못 맞춰서 그렇긴 한데, 그래도 나 잘하지?”
애나 어른이나 별거 아닌 것도 칭찬은 누구나 좋아한다. 어설프지만 뭔가 열심히 하려 하는 남편이 고맙다. 은퇴 후 어떻게 해야 아내와 갈등 없이 사는 지 어디선가 많이 주워들은 듯하다. 이젠 상황이 역전되어 가끔 어쨌건 내가 바깥사람이 되었다.
“아, 그걸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해? 아휴 진짜!”
“그것도 몰라?”
“그러게······.”
나의 폭풍 잔소리에도 남편은 권위적이며 뾰족하고 예민하던 심성은 어디로 갔는지 멋쩍게 웃음으로 승화시킨다. 기업체 임원으로 퇴직한 남편은 회사 일에 전념하다 보니 집안일은 정말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그래서 ‘에구 그냥 내가 하는 게 낫지.’이라고 생각하며, 혹은 속이 터져서 내가 해버리곤 했다. 그런데 이젠 나도 사소한 집안일이 슬슬 귀찮기도 하고 부담스럽게 여겨지곤 한다. 내가 만약 아프거나 부재중일 때 남편도 집안일을 원활하게 할 수 있어야 본인한테도 편할 거라는 생각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과일을 깎아 달라고 하면 다음 날 아무리 찾아도 과일칼이 없다. 과일 껍질 버릴 때 칼을 같이 버렸기 때문이다. 세탁기 좀 돌리라고 하면 세제와 유연제를 바꾸어 넣는다거나, 음식 쓰레기 좀 버려 달라고 하면 충전 카드를 놓고 오기 일쑤이다. 그 후 카드에 동 호수를 적어 놓았더니 가끔 경비 아저씨가 갖다주시기도 한다. 답답하기도 하고 때로는 화가 나기도 한다. 생활지수가 떨어진다고 비난도 해보지만 한편 생각해 보면 안 해본 일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내가 퍼붓는 하루 총량의 잔소리를 웃음으로 승화시키며 그래도 무언가 자꾸 해보려 하는 남편의 노력이 가상하다.
요즘은 빨래 접기를 가르치고 있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베란다에서 들어오는 햇살을 맞이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며 함께 빨래 접는 시간이 즐겁다. 바깥양반과 안사람이 각자의 역할을 해내며 치열하게 살아온 지난날들을 돌이켜 본다. 이제는 바깥양반과 안사람의 역할이 구분 없이 흐려지고 있다. 이젠 별일 아닌 일상도 함께 꾸려나가며 흐르는 강물처럼 세월 속에 우리의 시간을 천천히 맡기려 한다. 우린 서서히 편안하게 시간 속으로 익어가고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