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놀이터

by 밈미 루시아

“우와 대박! 고구마 너무 맛있어요!”

방금 캐낸 진한 자색의 신선한 고구마를 받은 지인들에게서 듣는 칭찬이다. 내 땅에서 내 손으로 농작물을 거두어 지인들과 나누는 게 평소 꿈이었던 남편은 은퇴를 앞둔 몇 년 전부터 준비하더니 드디어 공기 좋은 시골 산 아래 자그마한 텃밭과 쉼터를 하나 마련하였다. 처음에는 농사 지식이 없어서 3년 동안 땅의 절반은 풀을 키우며 방치하다가 드디어 올해 제대로 수확했다.

그동안 우여곡절도 많았다. 남편은 무거운 직장 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가 너무 많았나 보다. 이렇게라도 쉼을 하고 싶었던 남편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뭔가 허세를 부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 고생을 하면서 왜 소득 없는 일을 하는지 나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는 반대하는 마음이 커서 늘 시큰둥하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남편은 시골에 혼자 다니며 할 줄 모르는 농사일에 무리했는지 어느 날 안면마비(구안와사)가 왔다.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양방과 한방에서 동시에 치료를 받으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 후 불안한 마음에 내키지 않지만, 시골길에 동행했다. 그러면서 나도 농사의 즐거움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주말마다 자라나는 푸성귀들을 따며 자신을 대견스럽게 여기는 남편에게 난 늘 투덜대곤 했었다.

“기름값, 통행료, 시간 투자, 수고비 등등 따져보면 항상 손해야!”

“그게 뭐가 좋다고 얼굴 좀 봐, 완전 시골 아저씨야! 왜 그런 손해나는 일을 하는지!”

“차라리 유기농을 사 먹으면 되지, 놀이터치곤 너무 비싼 놀이터 아니야?”

한번 시작하면 연타로 비아냥거리며 부정적 시선을 보냈던 일들을 생각하니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든다. 게다가 지금은 텃밭 농사를 그냥 유지해야 하는지 정리를 해야 하는지 나도 갈등이 생긴다.

여름철 내내 열심히 자란 잎사귀 무성한 고구마 줄기를 하나하나 낫으로 걷어낼 때 마음이 설렌다. 땅속 사정을 모르니 어떤 녀석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지, 어미 줄기 하나에 몇 개의 자식들이 매달렸을지 기대감에 차서 조심스럽게 호미로 살살 긁어내 본다. 그다음 줄기 하나마다 행여 다칠세라 무릎 꿇고 기도하듯 양손으로 정성스럽게 흙을 모아서 파낸다. 드디어 붉다 못해 보랏빛에 가까운 녀석들이 줄줄 따라 나온다. 와, 함성이 터져 나온다. 역시 이 녀석들은 남편의 수고를 배신하지 않았다. 모양 예쁜 것들과 상처 난 것들을 선별하고 대, 중, 소 크기도 나누어서 고구마 상자에 담고 상자 윗면에 받을 사람 이름을 쓰면 끝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스물다섯 집에 고구마를 나누어 주었으니 대단한 성과이다. 받는 이들이 모두 감동을 받는 것 같아서 다행이고 감사하다. 닷새는 도시, 이틀은 촌 생활 후 수확의 기쁨을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느껴보니 감회가 새롭다.

앗, 그런데 다 나누어서 담고 보니 우리가 먹으려고 남겨 둔 고구마는 새끼손가락처럼 가느다랗고, 울퉁불퉁 모양도 안 예쁘고 무보다 더 큰 것들, 찍히고 굼벵이가 파먹어 상처 난 고구마들만 남아있다. 아니, 전문 고구마 장사꾼도 아니고 예쁘고 모양 좋은 것들은 다 남 주고 이게 뭐람! 농부의 마음은 이런 것인가 보다. 흙 범벅인 손과 손톱에 끼인 때를 보며 나도 더불어 농부의 아내가 된 듯하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우리보다 남을 먼저 생각한 남편이 고맙다. 내게는 늘 정석을 요구하며 다소 빡빡하게 굴지만 훈훈한 마음을 지닌 그가 내 남편이라서 참 다행이다.

흔히 시골살이하면 텃세가 심하다고 하던데, 우리가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동네 주민들이 환한 미소로 반겨 준다. 언제나 똑같은 패턴으로 나누는 인사는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어서 와, 마당에 풀이 기다리고 있어!”

남편은 풀밭 놀이터로 장화와 호미로 무장을 한 후 신나는 발걸음으로 안부 인사를 하러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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