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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세담 Jan 19. 2020

혼커피 하는 엄마

엄마도 휴식이 필요해

엄마가 되는 순간부터 내 몸은 나만을 위한 몸이 아닌 게 된다. 절대적으로 엄마인 나를 필요로 하는 생명체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단 몇 시간 만이라도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가도 하루에 단 몇 시간 엄마와 함께하는 순간을 기다린 아이들을 생각하면 몇 시간은커녕 몇 분도 나만을 위한 시간을 내는 것이 미안하고 죄책감이 드는 아이러니한 감정이 매일매일 매 순간 반복된다.


그런데, 그런 아이러니함을 경험하며 산지 10년....

세상에... 이제는 이렇게 주말에 2시간 정도는 혼자 커피숍에 나와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날이 온 것이다. 혹자는 혼커피 하는  2시간이 뭐가 그리 대단하냐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를 키워본 엄마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아이는 매 순간, 심지어 아이 혼자 노는 순간조차도 엄마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엄마에게 자유시간은 너무나도 큰 사치라는 것을... 그런데 이렇게 혼자서 커피를 마시며 책도 일고 글도 쓰고 할 시간을 갖게 되다니... 얼마나 감개무량한지 모르겠다.




나는 엄마가 되면서부터 자기 계발서를 읽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읽기가 싫어졌다. 자기 계발서의 본질은 결국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믿고 최선을 다하고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라...인데 이를 위해서 항상 나오는 방법이 본인을 위한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모르는가. 꿈을 잊지 말고 꿈을 향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스스로를 돌보고 채워가기 위해 노력하고 투자해야 한다는 것을. 그런데 그런 모든 '나를 위한 시간' 은 엄마가 되는 순간 내가 우리 아이에게 주어야 할 시간에서 빼내야만 하는 시간이 되어 버리고, 나는 더 이상 나만을 위해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자꾸만 나만의 시간을 가지라고 말하는 자기 계발서가 읽기 싫어졌다.


나는 우리 첫째가 태어나기 전까지 29년간 내가 아침잠이 전혀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주말에도 7시가 넘어서 일어나 본 적이 없고, 휴일에도 반나절 이상 일정 없이 보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늘 계획을 세워 무언가를 계속하는 바지런함을 나의 가장 큰 강점으로 생각하고 또 그런 생활 속에서 행복을 느꼈었다.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지각이라는 건 해본 적도 없고 학창 시절 아무리 아파도 학교를 결석하거나 조퇴한다는 건 나 스스로 절대 용납할 수 없어 12년 개근을 한 말 그대로 범생이 중에 범생이였다. '진보하지 않는 모든 것은 퇴보한다.'는 말은 중학교 때부터 나의 삶의 모토처럼 자리 잡았고 늘 열심히 바쁘게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니 온전히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나의 삶, 나만 생각하고 계획하고 실천하면 되던 나의 생활이 더 이상 가능해지지 않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엄마가 된다는 것은 분명 엄청난 축복이고 행복이지만, 고백컨데 이렇게까지 내 삶이 달라질 거란 건 알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로 살아온 나의 30대는 너무나도 행복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힘들기도 했다. 사춘기 청소년들이 알을 깨고 세상을 나올 때 느끼는 두려움과 비슷하다 싶을 정도로 혼란스럽고 두렵고 힘든 시간이었다.




엄마가 된 지 10년, 아이를 키우면서 진정한 어른이 되어 간다는 말이 이제는 조금씩 이해가 된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면서 나 또한 더 깊고 더 큰 나로 성장해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처음부터 들었던 것은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실로 엄청난 체력을 요구했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둘 다 내 기준을 충족할 만큼 잘하는 것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일과 육아 모두에 나름 최선을 다한 결과, 이제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이 정도의 여유가 생기고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지난 10년처럼 앞으로도 엄마로서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최대한 정성을 쏟을 것이다. 여전히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을 내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주말에 혼커피 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엄마도... 휴식이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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