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난히 빠르게 지났다. 갈듯 말듯 움직이지 않던 시계가 부지런히 돌아 어느새 12월이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일 년에 두 번, 부활과 성탄을 앞두고 의무적으로 고해성사를 한다. 지금은 12월이니 성탄 전 대림시기에 판공성사를 하며 지난 시간 나의 잘못을 되짚어본다. 의무적이라고는 하나 왠지 이 시기가 되면 머리와 마음으로 빠르게 나의 과오를 돌이켜보게 된다. 십계명을 따라 하나하나 헤아리자면 끝도 없을 잘못들이지만 마음속으로 성사 준비를 마치고는 나도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타박타박 걷는 발걸음이 괜히 무거웠다. 나는 본디 잘못을 저지르고도, 아니 잘못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아니어서 그것부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셈인데 언젠가부터는 티끌만 한 잘못도 손엣가시처럼 거슬린다.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성장이긴 하다. 오만한 내 마음이 평정을 찾고 조금이나마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성당은 벌써 사람들로 북적했다. 판공성사 때에는 다른 본당의 신부님들께서 손님 신부님으로 오신다. 한꺼번에 성사를 보는 인원도 많고 시간도 길어지기 때문이다. 가장 짧은 줄인 우리 신부님 방을 지나 당연히(?) 손님 신부님 방의 줄에 앉아 내 차례를 기다렸다. 언제든 본당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하는 것은 굉장히 꺼려진다. 이제는 일 년 가까이 나를 보아왔고, 작은 성당이라 당연히 내 목소리를 아실 테니까 작은 죄도 그 앞에서는 더 쑥스러워지는 것이다. 그런데 날씨도 추운데 긴 줄을 기다리려니 자꾸만 분심이 들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우리 신부님 줄에 슬쩍 끼어들어 앉았다.
방문을 열고 가만히 앉아 고해성사를 하는 동안 부끄러운 마음은 간데없고 고해실에 켜 둔 은은한 초가 내 마음에도 불을 지피는 것 같았다. 내 죄를 고하고 보속을 받았다. 성체조배. 처음 받는 보속이다. 부끄럽지만 세례를 받은 지 5년이 지난 나는 여태 성체조배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말만 천주교 신자였지 정말은 나일론 신자가 아니었나 싶어 지니 부끄러운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어쨌든 보속을 받았으니 성전에 앉아 기도를 하고 가만히 성체 앞에 앉았다. 낯설었지만 내 마음이 나도 모르게 내 잘못과 내가 나아가고픈 방향에 대해 예수님께 말씀드리고 있었다. 지지난해 주신 보속처럼 내가 먼저 미워하고 맞지 않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낮춰 살겠노라 청했다. 그렇게 가만히 응시하고 기도하고 있었을 뿐인데 마음이 울컥하고 눈물이 글썽였다.
언젠가 내 기도를 정말 들어주신 적이 있는데, 그때 이후로 나는 무엇이든 기도하면 언제라도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아무리 해도 풀리지 않던 실뭉치가 그렇게 풀리고 난 후에 더 열심인 신자로 살려 노력하고, 내게 주어진 봉사의 기회를 가능한 감사히 받는다. 흘러가는 대로 내게 주어진 대로 몸과 마음을 쓰는 동안 나는 감히 내가 전보다 훨씬 풍족해졌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쁨과 은총이 나에게도 가득 내린 거라고 믿는다. 성체조배도 고해성사도 자주 해야겠다. 그날밤 내게 주신 보속은 보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