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
지난 주말 온 가족이 영화 <장화 신은 고양이 2>를 보고 왔다. 아이와 함께 볼 수 있는 영화의 선택 폭이 넓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지만 그가 보여준 메시지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영화 속의 고양이는 적어도 스스로 느끼기에 멋지고 후회 없는 삶을 산다. 9개의 목숨이 있으니까. 우리는 흔히 한 번뿐인 인생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멋지게 살자! 외치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를뿐더러, 그것을 안다고 해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성취에 가까울 수 있는지 모른다. 내게도 9개의 목숨이 있다면? 모험을 즐기지 않으니 분명 비슷한 9개의 삶을 살겠지만 어떤 모습으로 살더라도 ‘나’에게 집중하는 삶을 살고 싶다. 두루뭉술한 것 말고.
8개의 생을 사는 동안 고양이는 한 번도 주저하거나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좋게 말한다면 그렇지만 사실은 막무가내인 고양이의 삶이 때때로 부러웠다. 나는 얼마나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왔는지, 내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지내는 동안 잃은 시간과 노력은 얼마만큼인지. 쉴 새 없는 후회가 밀려왔으나 일부는 현재 진행형이니 더 할 말이 없다. 위로가 되는, 아니 공감이 되었던 것은 그렇게 큰소리치던 장화 신은 고양이도 마지막 하나의 생 앞에서는 별 수 없이 작아지는 존재라는 사실이었다. 우리들 모습 같았다. 쉴 새 없이 고양이를 따르던 ‘두려움’이라는 존재. 타인은 느끼지 못하고 오롯이 나만 보고 느끼는 존재이지만 그로 인해 평소보다 더 용기 없고 주눅이 드는 나를 만나게 된다. 나도 어떤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아니, 하는 중에도 끊임없이 맞닥뜨리게 되는 존재다. 영화 속 등장인물일 뿐이었던 그 고양이를 보며 사실은 나의 허물과 그림자를 보았다. 생을 사는 동안 내가 정말 지키고 싶은 것,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은 무엇인지 갈팡질팡 하는 마음을 부여잡고 묻고 싶다.
오늘 미사 강론 중에 들었던 신부님 말씀이 잊히지 않는다. ‘세상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세상에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그 말씀. 흔히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남의 행복은 보이고 나의 행복은 보지 못하는, 마찬가지로 그 반대의 경우도 까맣게 잊고 사는 요즘의 생활이 그 한 말씀으로 다르게 와닿았다. 잊지 않겠다고 급히 휘갈겨 적어 놓은 주보를 다시 펼쳐 보며 또 생각한다. 그래서, 두려움을 이겨내고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마지막 생을 사는 장화 신은 고양이가 결국 해냈듯 두려움을 떨쳐내고 현재 원하는 것에 집중하며 곧게 나아갈 것. 작다면 아주 작고 소박한 바람이지만, 요즘 읽는 책에서 한결같이 말하고 내가 느끼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시작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이런 문구를 보았다. ‘의지나 의향은 새로운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고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상태다. 의지의 시작도 끝도 당신이다.’
그러니 내 마음이 더 야물어지길, 묵주 한 알 한 알 담아 바치는 기도로 앞으로 일구어 갈 내 마음길이 조금 더 단단하고 곧을 수 있기를 빌고 또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