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이 하는 일, 내 마음이 하는 일

by 임루시아



며칠 전 나눔의 집에서 배식봉사를 했다. 시내의 한 성당 한쪽에 마련된 ‘나눔의 집’이라 불리는 공간에서 취약계층을 위한 급식을 하는 곳인데, 나는 우리 성당의 봉사자 둘 중 하나로 겨우 하루 봉사를 위해 시간을 냈을 뿐이었다. 내 나이 마흔이 다 되도록 해본 것보다 안 해본 게 훨씬 많지만, 오늘의 봉사는 중고등학교 시절 점수를 얻기 위해 억지로 가야 했던 봉사활동이란 이름이 붙은 그것과는 완전히 달랐던 마음 봉사였다.

지금 와 고백하지만 지난주 내내 바빠서 이번 주에는 좀 여유 있게 지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요즘 컨디션도 엉망, 몸 상태도 엉망이라 가겠다는 말을 선뜻 한 것에 후회도 했다. 집을 나서기 전까지는. 그런데 가보고 알았다. 나는 내 주변의 작은 것, 아니 내 속밖에 들여다보고 살지 못했구나. 가진 것에 감사하기보다는 불평불만을 더 늘어놓기 바빴구나. 두세 시간 남짓 내 시간을 쓰고 마음은 훨씬 풍족해져서 돌아왔다.

내가 도착한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한 봉사자 어르신들께서 본인 또래의 혹은 더 젊은 누군가를 위해 밥을 퍼고 반찬을 담고 뒷정리를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내 손이 이렇게 쓰임에 감사하는 삶이 얼마나 멋진가라는 거. 누군가 시켜서, 돈을 받고 하는 것도 아닌 봉사인데 평일 아침을 온전히 봉사하는 데 쓰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돌아오는 길에 함께 간 봉사자 자매님께서 세상 아직 살만하지요, 하셨는데 정말 그랬다. 시작도 전부터 내 발걸음을 주춤거리게 만든 마음도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가서 도운 거라고는 설거지 거리에 세제를 묻혀 닦는 것뿐이었다. 그 작은 공간에서 각자 맡은 일을 빠뜨림 없이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봉사, 시간봉사는 정말 티끌을 모으면 태산은 못 돼도 솜뭉치만큼은 커진다는 걸 느꼈다.


어떻게 알고 오신 건지, 문을 열기도 전부터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서 그간 내가 지낸 삶은 참으로 평온했으며, 매 끼니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는 일이 매 끼니를 어디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 까 걱정하는 일보다는 배부른 걱정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요즘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워낙 풍족한 생활을 하고 쌀 한 톨, 아니 밥 한 덩이 남기는 것쯤이야 아무 문제도 아니게 사는데 그분들의 식판에 수북하게 담긴 쌀밥을 보면서 그간 먹었던 마음이 부끄러웠다.

한 끼 밥은 공짜가 아니다. 딱 300원만 받지만 몇 번이라도 추가로 먹을 수 있고 어떤 분들은 집에 있는 식구들을 주겠다고 봉지에 밥이며 반찬을 싸 가기도 한다고 들었다. 형편이 넉넉한 이도, 그렇지 못한 이도 모두 들러 한 끼 먹는 식당이지만 나는 내내 TV에서만 보던 급식 봉사라는 걸 난생처음 해 보며 마음이 무겁기도 했으며 또 한편으로 무언가 나눌 수 있음에 기쁘기도 했다.

누군가 쌀 한 포대를 지고 오셨다. 우리가 빨랑카라고 부르는 일종의 도움의 손길이었는데, 그분을 따라 쌀 한 포대의 종착지로 가니 저온 창고 가득 이렇게 모인 쌀 포대가 층층이 쌓여 있었다. 어떻게 300원을 받고 이곳이 유지될까 걱정했는데, 시에서 주는 도움 외에도 이런 보이지 않는 자잘한 손길이 있어 모두 가능한 것이구나 싶었다.


사람은 낮은 곳보다 높은 곳을 더 자주 보며 산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직시하며 높은 곳을 보며 사는 삶은 값지다. 그러나 매번 나보다 잘된 이, 잘난 이를 부러워만 하며 속 끓이며 사는 삶보다는 내가 기꺼이 쓰일 수 있는 곳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것도 내 입으로 들어가는 밥이 해결되고 나서의 문제겠지만..

힘이 들 때 생각한다. 힘이 든 것 자체로도 견디기 힘들고 갑갑한 상황들이 더 많지만, 내가 감사히 쓰일 수 있는 어떤 자리가 가끔 고맙게 느껴질 때가 있다. 돈을 받고 일하는 것과 마음에서 우러나서 몸을 움직이는 것의 차이는 꽤 크다. 가끔 하는 이런 짧은 시간의 경험이 메마른 나에게 물을 주고, 내 삶을 더 풍성하게 열매 맺게 돕는다. 나만 들여다보고 살던 내가 조금 멀리 보고 건강한 마음으로 살 수 있게 해 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내 손이 가만히 마음이 하는 일을 다독이고 감사할 수 있으면 좋겠다. 더디더라도 나를 돌보고, 내 주변의 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평생 두리번거리면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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