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마라
지난주부터 성당에서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독서 봉사자가 되었다. 기껏해야 한두 주에 한 번뿐인 일이지만, 여러 신자들 앞에서 내 목소리를 내기까지 용기를 내는 데만 몇 해가 걸렸다. 수십 번 말씀을 읽고, 내 목소리를 녹음해 들어보면서 이것만큼 가깝고도 먼 소리는 없구나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저음이던가, 말을 포개던가. 내가 이렇게 말이 빠르고 급했던가 등등.
생각해 보면 나는 내 목소리를 내는 것뿐만 아니라 누군가 타인의 목소리를 들어줄 때에도 보이지 않는 필터 하나씩을 씌워 왔다. 말의 알맹이보다 목소리의 높낮이, 말소리의 빠르기, 억양 등에 집중하느라 누구의 목소리든 거절하지 못하고 들어주기에만 바빴던 사람이다. 물론 지금도 그 미묘한 목소리의 차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나를 내려놓기 일쑤다. 그런데 살면서 가장 중요한 목소리는 멀고도 가까운, 나의 내면의 목소리라는 걸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소리를 내어 내 귀로 들리는 나의 말도 낯설었지만 그것만큼이나 익숙지 않고 또 거스르며 사는 것이 적어도 내겐 내면의 소리 아니었던가. 왜 그렇게 눈치를 보냐던 남편의 말은 아마도 이런 것 때문이었나 보다. 단단해 보이지만 흔들리며 사는 데 익숙한 내가 내 목소리를 즐겨 들으려면 무던히 애를 써야겠지.
독서 봉사를 하겠다고 했을 때, 면담을 하며 주님께서 불러주심에 응답해 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내 목소리를 입 밖으로 내는 연습을 수십 번씩 하면서, 왜 나는 잘 풀리지 않을까 두리번거리고 발 비볐을 때의 문제에 비로소 답을 찾을 길을 열어준 것만 같았다. 남의 목소리를 듣는데 익숙해져서 내 목소리는 외면하고 지냈던 나에게 네 목소리도 한번 들어보아라, 네가 듣는 소리와 마주 앉은 이가 듣는 네 목소리는 같지 않으니 너무 애쓰지 마라. 마음 또한 그러할 테니 너무 맞추며 살지 마라. 아주 내 식대로 해석한 듯하여 우습지만 마음이 가벼워지니 이렇게 믿으련다.
깊이 듣지 못했던 나의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허공을 헤매다 한꺼번에 오는 중이다. 사실 요즘 읽는 모든 책들과 생각이 중심 잡기, 나의 현재를 즐기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름대로 즐기면서 산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향해 있는 곳이 내가 맞는지 다시 비뚤어진 삶의 조각들을 맞추어 가고 있다.
어쨌든 다시 내일, 또 한 번 독서 봉사자로 제단에 선다. 내 목소리로 전하는 말씀이 가까이 성당에 앉은 신자 분들께 전해지듯 사실은 내게 가장 많이 전해지고 젖어드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나 또한 어느 목소리보다 내 목소리에 가장 충실하게 살며 지금, 현재를 즐길 것이다. 사실은 속으로 가장 많이 외쳤을지 모를 내 목소리에 응답을 주신 보이지 않는, 그러나 늘 가까이에 있는 그분의 목소리에 감사하며 지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