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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Feb 28. 2023

닮고 싶은 사람들

내가 만났던 선생님들을 기억합니다



어려서 본 선생님은 곱고 예뻤다. 얼굴이 예쁘기도 했지만 마음이 예쁜 선생님이 많았다. 나지막하지만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언제나 날 보며 활짝 웃어주셨다. 쉽게 화내는 일도 없었다. 내 마음을 읽고 있는 듯 다가와 등을 토닥여 주고 내가 읽고 쓰는 것에 말을 보태주었다. 내 기억에 남은 선생님의 모습은 이미 선별된 것이어서 화를 많이 내거나 엄했던 선생님, 학생인 내가 기억하고 싶지 않거나 기억을 못 하는 선생님도 많다. 하지만 내가 동경하던 선생님의 모습은 어린 내가 두 눈과 마음의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라도 닮고 싶었던 어른의 모습이었다. 나도 정말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선생님, 방송작가, 작가, 연구원? 뭐 어쨌든 많은 꿈을 돌고 돌아 나는 꿈의 목록에는 없던 학원 선생님이 되었다.


어떤 모습이 어려서부터 꿈꾼 선생님의 모습인지 모르겠으나 나중에 내가 그리는 모습과 다른 일상을 보낼 때마다 그만두겠단 말을 수없이 하면서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도록 이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내 자리가 여러 번 바뀌는 동안 꿈 많던 나는 어디에도 없는 것 같이 느껴질 때는 가끔 서글퍼지기도 했다.

아이들의 시험일정에 쫓겨 시험 대비를 하며 식은땀을 흘려야 했던 때도 있었고, 그러다 점수가 좋은 아이들이 나오면 덩달아 칭찬받는 선생님이 되기도 했었다. 이제 더 이상 시험 점수에 쫓기는 삶을 살지는 않지만 지금 생각해도 가장 좋은 건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가 나를 더 어른으로 만드는 것 같은 그 기분이었다.



선생님이 되어 만나는 아이들 중에는 공부를 잘하거나, 예쁘고 잘 생겼다거나 하는 외적인 요소들과 별개로 마음이 가는 몇이 꼭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어쨌든 눈길을 한 번 더 주고픈 아이들을 만나며 나는 그들에게 좀 더 단단하고 따뜻한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지금 학원에서 꼭 말이 없을 때의 나와 닮은 아이를 만났다. 잘 웃지 않고 쉽게 마음을 내어주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 자꾸만 눈길이 가는 그런 친구. 처음 만난 건 벌써 4년 전, 아이가 2학년 때였다. 낯을 가리고 잘 운다는 이야기를 먼저 듣고 만났지만 내 눈엔 그저 작고 예쁜 소녀였다. 조용히 앉아 책 읽는 모습도 마음에 들었고 듣던 것과 달리 내 수업 시간엔 마음을 열어주어서 오히려 그 아이 덕분에 수업하는 내내 즐거웠다. 그런 아이와 며칠 전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몇 년 사이 나보다 더 커진 아이는 소녀가 아니라 이제 제법 아가씨 태가 나는 것 같았다. 좀 더 따스한 말로 안아주며 보내고 싶었는데 내가 기억하던 선생님들의 다정한 태도까지는 미처 닮지 못했던 나는 몇 번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등을 토닥여주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메시지로 못다 한 말을 전하니 방학 때 놀러 갈게요!라는 의외의 답을 보내와서 또 한 번 놀랐다.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언젠가 내가 아이에게 선물했던 책 <메리 포핀스>의 주인공처럼 나도 이 아이에게 다소 쌀쌀맞아 보이지만 또 조금은 다정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길.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어른들의 커다란 세상과 저희들을 이어주는 다리일 거다. 다른 어른들보다 더 가까이에서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 부모님께 못다 한 말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사이이기도 하다. 그런 아이들을 대할 때마다 불쑥불쑥 학창 시절 내가 만난 선생님들이 떠오른다. 나를 토닥여주던, 무언가 시도해 볼 용기와 믿음을 준 그들을 떠올리면서 내가 만난 그분들의 따뜻한 시선을 그리워한다. 모든 아이들은 사랑스러운 존재지만 그럼에도 화를 꾹꾹 누르고 만나야 하는 이들 앞에서도 가급적 좋은 선생님의 이미지로 남고 싶다. 욕심이겠지만. 선생님이 열어주는 작은 세계가 아이들에게는 또 다른 꿈으로 향하는 길이 될 수 있고, 다음 걸음을 내딛는 용기가 될 테니까 말이다. 다행이다. 내게 남은 선생님의 모습은 긍정적이고 내가 닮고 싶은 것도 그들의 모습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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