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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Mar 16. 2023

내 불안을 뛰어넘길

화창하다. 창으로 쏟아지는 해도, 오늘 아침 만난 햇살도 모두 포근하고 좋다. 사실 봄이 되면 자꾸만 짧아지는 계절을 아쉬워하며 즐겨야 하는데 나는 걱정이 앞선다. 이제는 내 분신이 되어버린 루푸스 때문이다. 추운 겨울에는 몸을 사리며 나를 몇 겹으로 무장하고 있으니 생각보다 수월하게 계절을 보낸다. 꽃이 피니 나의 오늘도 피겠거니 희망을 품는 이 계절이 오히려 나의 허를 찌르곤 한다. 지난 정기검진 때 몸 상태가 좋아지고 있고 날도 풀리고 있으니 약을 좀 줄여 봐도 되지 않겠느냐는 교수님 말씀에 나는 한사코 손을 내저었다. 내 몸은 내가 가장 잘 안다. 지난 몇 년을 통틀어 내게 봄은 마음을 놓으면 몸이 내려앉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자꾸 멍이 든다. 엄마가 털피라고 부르는 나는 유난히 여기저기 잘 부딪히고 멍이 들곤 하는데 이번엔 좀 이상하다. 왼손 네 번째 손가락과 다섯 번째 손가락 사이에 멍은 어떻게 해야 생기는 거지? 그저께 문득 내 손등에 든 멍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이 보시곤 나보다 더 깜짝 놀랐다. 초기 발병 시에 혈소판 감소증으로 꽤 고생을 했던지라 지레 겁을 먹는지도 모르겠다. 일교차가 크니 레이노증상도 심해진다. 남편은 못 봤다는데 하얗게 되지만 않았을 뿐이지 시체처럼 검붉은 빛의 내 손을 봤다면 절대 그런 말은 못 할 거다.  어젯밤에는 얼굴이 후끈거려서 몇 번이고 체온을 쟀다. 생리주기 때문에 열이 오르는 건지, 아파서 그런 건지 한동안 일상이 비틀거릴 것 같다. 괜한 건강 염려증이려니 하지만 그래도 멍이 두 개만 더 들면 병원에 가겠다고 다짐한다. 내가 이 정도쯤은 가지고 놀 수 있을 만큼 오래 데리고 살았으니 말이다. 

내일 내분비내과 진료를 위해 오늘 아침 일찍 가서 채혈을 했다. 평소라면 금방 멎는 피가 한동안 멈추지 않고 솜 하나를 푹 적셔서 또 깜짝 놀랐다. 채혈한 자리를 꾹 누르고, 두근거리는 내 마음도 누르며 이제 괜찮아진 팔을 쓸어본다. 



겉으로 아파 보이는 사람 같지 않다는 게 다행일 때도 있지만 정말로 아플 때에는 누군가 나더러 꾀병이라고 할까 봐 걱정이다. 같은 병을 가진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면 하나 같이 같은 말을 한다. 어디 부러지고 다친 상처가 있는 환자들은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불편과 고통을 잘 알지만 우리 같이 티 안 나게 아픈 사람들은 그래서 더 아픈 것 같다고. 안 아픈데 아픈 척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더 아프게 하는 거라고. 계절 탓도 있지만 늘 이야기하는 스트레스는 정말 만병의 근원이다. 즐거워야 할 봄을 누군가의 시작으로 말미암아 희생해야 하는, 속절없이 흘러버리는 시간 앞에서 나도 이제 무엇으로부터든 가벼워지고 싶다고 중얼거린다. 전보다 가벼워진 아침 약을 기분 좋게 삼키며, 더 늘리진 말자고 다짐하며, 매이지 말고 가볍게, 가뿐하게 지내겠다고 다짐하는데 쉽지 않다. 적당히 끊고, 더 많이 내 하루를 즐기면서 살 테다. 바쁜 하루가 힘들고 어렵더라도 오롯이 ‘내 일’로 가득한 날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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