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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Jan 02. 2024

굿바이 2023



시작은 언제나 설레지만 뭐 하나 똘똘하게 해낸 게 없으니 그 끝은 늘어진 옷자락처럼 쉬이 놓아주기 아쉽다. 2022년을 보내며 나는 ‘단순하게 나를 잘 돌보며 행복할 것’을 2023년의 목표로 삼았다. ‘나’ 돌보기가 목표였던 만큼 나는 얼마나 나를 잘 지키고 행복했던가를 반추해야지. 2022년 글에도 그 지난해가 더 옹골차게 느껴진다고 적었던 걸 보니 해를 거듭할수록 만족과 불만족 사이의 거리는 넓어지는 듯하다. 아마 스스로 정해둔 목표와 현실 사이의 괴리가 그만큼 큰 것일 테다.


슬프지만 2023년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것은 새 학기의 스트레스와 루푸스로 인한 입원이었다. 달라진 것이라면 나를 녹여 일했던 직장에서의 퇴사. 그리고 전보단 좋아진 몸과 마음 상태, 아닌 것에 대하여 아닌 것이라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는 것이다. 장족의 발전이다. 사실 이 모두는 하나였다. 되도록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했지만 일하는 동안 늘 시즌별로 신경 쓸 일이 있었다. 그것이 사람과 엮이며 스트레스지수를 계속 높였고, 제대로 조절되지 않는 면역체계가 다시 이상을 일으켜 나는 늘 쳇바퀴 돌 듯 병상에 눕는 것이었다. 서너 번 반복하고 나서야 내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자존감을 높여준 곳이기도 하지만 실망스러운 나를 가장 많이 마주해야 했고, 타인으로 인해 자존감이 떨어진 시간이기도 했다. 좋은 사람을 만나 좋았으나, 내 능력 밖의 사람과 함께 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여느 해의 망설임보다 포기가 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5개월이 지났고, 나는 전보다 밝아졌다. 흔한 소재로 떠돌던 글 쓸 거리 하나가 사라진 건 아쉽지만 오늘 드디어 스테로이드제를 조금 줄였다. 이 계절에 약을 줄인 건 정말 몇 년만의 일이다.

3년째 이어오고 있는 목글모. 내 글을 읽을 때마다 단조롭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지만 그래도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에 놓인 자체가 감사다. 올 초에 시작한 10쪽 독서로 읽지 않고 관심 밖으로 내몰렸던 책을 다시 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역시 책으로의 치유는 무엇보다 효과가 확실했다. 가장 큰 발견은 역시 박웅현. 책장 속에 빛바래 가던 ‘책은 도끼다’를 꺼내 읽으면서 어렵게 느껴졌던 인문고전에 마음을 열 수 있었다.


한 해를 회고하면서 늘 지난해의 글을 찾아본다. 결과의 반추는 늘 과거의 나와 싸움이기 때문이다. 2021년의 나는 소소한 것들로 꿰어진 일상도 얼마나 감사하고 뿌듯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고 적었다. 사실 이렇게 사는 것이야 말로 어렵지만 아름다운 일이라고 2022년의 나도,  2023년을 며칠 남겨둔 나도 생각한다. 무엇 하나 뾰족하게 드러난 성과가 있으면 아, 이걸 얻느라 내 한 해가 꽉 찼었구나 했을 텐데 그것만은 아쉽다. 그래, 자랑할 만한 성과는 없지만 아직은 이렇게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이 폭풍우 치는 바다보단 낫다고 생각하기에 나의 한 해가 큰 굴곡 없이 무던히 흘러왔음에 감사한다. 결과적으로 지금 행복하니 2023년도 그럭저럭 살아낸 것 같다.


해마다 빼놓지 않고 생각한다. ‘나는 언제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이건 오래전부터의 바람이고, 그러기엔 지금 읽고 쓰는 시간이 너무 적지만 사유의 밭에라도 오래 머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일상이 발에 채일 듯 보잘것없고 자잘할지라도 그것들을 긁어모아 보석 같은 ‘나’의 하루를 채워가고 싶다. 언제 행복했던가 떠올려보았다. 무엇이라도 쓰다가 수영도 못하는 내가 넓은 글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바로 그때였다. 돈도 안 되는 글쓰기, 밥 벌어먹기도 힘든 글쓰기를 하고 있을 때 말이다. 우리 집에서 돈을 가장 많이 쓰는 내가 가장 돈 안 되는 일을 좋아하지만 얼마 전에 지난 계절에 쓴 독후감으로 포상금을 받았다. 일해서 번 돈 보다 액수는 한참 적지만 뿌듯함은 아주 큰돈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2024년엔 좋아하는 일로 돈 버는 방법을 찾아보아야겠다. 거창한 꿈을 꾸는 것은 아니다.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계속 시도해 보는 것. 알알이 흩어진 ‘나’의 모습을 같은 줄에 꿰기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아쉽지만 2023년은 이만 보내고, 더 단단해진 2024년의 나를 만날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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