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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Feb 24. 2022

열정? 그게 뭐지?

나에겐 발걸음이 가벼운 그런 날



유난히 발걸음이 가벼운 날이 있다. 하늘이 맑은 날도 그렇지만 양손 가득 혹은 마음 가득 짐이어도 그렇게 새털 같은 날이 있다. 나는 그런 날들 모두가 열정 가득한 날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젯밤 목글모의 공통 주제를 꺼내보며 한참을 고민했다. 열정? 나는 무언가에 정성을 쏟아본 적이 있던가. 살면서 내가 가장 열정적이었던 때는 언제였나? 아무리 생각해도 도통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글쎄, 그 순간들을 내가 잊고 있는 건지 잊고 싶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열정과 지금의 나는 거리가 먼 존재가 아닐까 생각했다. 지금은 그저 지나칠 정도로 건강 하나만 바라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정성을 쏟아붓는다는 것은 참 힘들고 어려운 일이며 열정을 불태운다 하는 말은 생각보다 쉽기도 하며, 어렵기도 하다. 그러다 오늘 문득 그 열정이란 말을 열심이란 말로 슬쩍 바꿔치기해 보았다. 그랬더니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는 나의 20대가 떠올랐다.


2년 남짓 일을 하다 망설이던 대학원에 입학했다. 학비는 장학금으로 채웠지만, 월세를 제외한 나머지 돈은 내가 해결해야 할 몫이었기에 공부를 하면서 마냥 놀 수는 없었다. 내가 뛰어든 길이었기에 불평불만도 없었다. 한 학기는 저녁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용돈을 채웠다. 매일 아침 연구실에 출근해서 책에 코를 파묻든 내가 책을 이기든 연구실 의자에 붙박고 앉았다가 2학기에는 산학협력단 소속의 청년 일자리에 지원했다. 대학 3학년 때 따 놓은 자격증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제법 높은 경쟁률을 뚫고 1년마다 평가와 재지원 과정을 거쳐 다시 진주로 오기 전까지 3년 이상 같은 자리에 있었다.  지역 내의 초중등 학생 세 그룹을 맡아 독서논술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나는 어학 전공이었지만 밤에는 문학 전공인 사람처럼 어린이책을 들고 다니며 아이들의 소리를 듣고 마음에 귀를 기울였다. 공부하는 내내 어머니들께서 학생 선생님이라며 배려를 해 주셨고 집 떠나 살았지만 더 살가운 밤을 보냈다. 버스로 온 시내를 누비며 하루 한 두 그룹의 아이들과 수업을 하다 오면 지칠 때도 있었지만 그땐 그게 참 좋았다. 그리고 다시 밤이면 다음 날까지 내야 하는 과제와 발표 준비로 새벽을 맞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잠이 많은 나도 그때는 뭐에 홀렸던지 밤을 지새운 다음 날에도 말짱했다. 그렇게 몇 년, 다시 진주로 와서 나의 하루는 또다시 밤과 같아졌다. 여전히 아이들을 만나며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나의 풋풋한 20대, 그때는 열정 가득했다 말할 수 있을까?



참 좋았다.

하고 싶던 공부를 끝내지 못했지만(물론 공부는 끝이 없겠지.), 그 전에도 지금도 나를 밥 벌어먹고 살아가게 하는 그것은 여전히 나의 허리를 잡고 달리는 중이다. 내 힘의 원동력인 셈이다. 밥을 먹인다는 의미는 여러 가지이겠으나, 나의 하루에 보태어 나를 더욱 즐겁게 뛰게 하는 무언가의 의미로 쓰고 싶다.

남들처럼 빽빽하게 채운 이력서를 들고 취업준비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나의 20대를 허투루 보내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때의 열심은 지금의 내가 속도 조절을 하며 걸어도 될 정도의 힘을 주었고 여전히 그때와 다름없는 하루를 살고 싶은 꿈을 꾸게 한다.


나의 열정은 강렬하거나 막강한 그 무엇도 아니다.

하지만 지친 내 맘을 두드려주고, 다시 가만 불을 지펴줄 동기가 되는 모든 것이며 나를 살게 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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