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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Mar 10. 2022

1층 살이의 고충

나만 생각하지 말아요



똑똑똑. 방금 급하게 문 두드리는 소리에 현관문을 열었다. 관리 사무소 직원 분께서 지난주부터 이번 주까지 있었던 두 건의 사고 경과와 조치를 설명하러 오신 것이다.


10월에는 1층에 사는 즐거움에 대한 글을 썼다. 물론 지금도 이른 아침부터 들어오는 창가의 햇살이 반가운 것은 그때와 같다. 아침을 깨우는 분주한 소리도 귀에 익었고 따땃한 햇살에 등이 익어가는 창가의 온기도 그대로다. 아이도 여전히 엄마를 코로나 쫄보로 부르며 집콕인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줄넘기를 한다거나, 트램펄린이나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놀면서 저만의 1층 세계를 즐기는 중이다.

하지만 좋은 점들만 쭉 나열했던 지난가을과 달리, 최근 겨우내 옷을 벗어 초록 이파리들이 없어진 것과 1층 집만 겪을 수 있는 수고가 현실로 다가왔다. 우리 집은 올해로 지은 지 10년 된 아파트다. 그래도 나름 관리 상태가 좋은 곳이고 평수를 달리하면서 사는 지금까지 6년 정도는 아무런 불편이 없는 곳이었다.



사달은 2월 말에 일어났다. 점심이 늦어 자연스레 저녁 식사도 조금 늦어진 참이었다. 한가롭게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아이가 엄마 이게 뭐야? 하고 소리쳤다. 평소에도 별일 아닌 일로 자주 불러댔기에 이번엔 또 무슨 일로 부르나 싶어 늦장을 부리며 부엌으로 갔다. 그랬더니 싱크대 앞에 물이 흥건하다. 점심 이후로 부엌을 쓴 일이 없어서 이게 무슨 일인지, 이 물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원인부터 찾아야 했다. 싱크대 하부를 열어보니 조금 전까지 내가 본 것은 아무 일도 아니었다. 딸아이에게 아까 콸콸콸 했어, 하는 말을 듣고 사건의 현장을 보니 배관에서 음식물과 물이 역류했나 보다. 급하게 사진을 찍고 닦아내면서 입에서 싫은 소리가 절로 나왔다.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관리사무실 전화도 먹통이었다. 부지런히 닦아내고 한숨 돌리려는데 어디선가 또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아... 다시 제자리다. 우리 라인 1층부터 15층까지 연결된 배관이니 그중 어느 한 집에서 또 물을 썼겠지... 그 오물이 다 우리 집으로 쏟아졌다. 가까스로 연결된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지하 주차장에서 벌어진 다른 배관 사고를 수습하고 있었고, 우리 집에 와서 그 꼴을 보시고 말을 잇지 못했다. 미안하다고 하실 밖에. 배관을 열어 꾸르륵 물 내려가는 소리를 듣곤 다시 걸레를 들었다. 열심히 닦고 짜고, 말리면서 그날 저녁은 땀과 수고로 저녁을 대신했다.

그만하면 좋았을 텐데, 다음 일은 바로 그저께 있었다. 학교 갈 채비를 하던 아이가 또, 엄마 이게 뭐야? 한다. 좀 전에 꿀꿀꿀 하는 소리를 듣곤 어디서 물을 많이 쓰나 보다 하고 지나친 내가 바보였다. 변기에서부터 시작된 거품의 향연은 욕실 바닥을 가득 덮고도 남았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관리사무소 직원 분은 사진을 찍고 상태를 일부 수습해 놓으시고는 또 배관을 열려 가셨다. 아, 이게 무슨 난리람. 그 후로 두세 시간이 지난 후에 상황은 정리되었다.



오늘 다시 문을 두드린 직원 분은 이제 그런 일은 없을 거라며 대신 사과를 하신다. 이미 우리 라인에 대한 조치는 취해 두었으며, 모레 하자 보수 팀이 오면 우리 동 전체에 대한 배관 점검을 할 거라는 말과 함께. 이분들은 또 무슨 고생이란 말인가.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내가 느끼기에 정말로 죄송하다고 하는 사람이 잘못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니 자꾸 의심을 하게 된다. 1년 동안 아무렇지도 않았던 배관 문제가 지금 터지는 것도 그렇고, 자꾸 우리 라인에서만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보니 새로 이사 온 어느 층의 문제가 아닐까 하고 의심을 품게 되는 것이다. 앞집이나 윗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아파트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적어도 함께 사는 이웃을 배려하지는 못할망정 상식 밖의 일로 타인을 곤경에 빠뜨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일주일 전에 우리 집에 쏟아진 라면 국물 폭탄과 그저께 벌어진 거품 사건은 아마 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베란다나 욕실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밤마다 세탁기를 돌린다거나, 늦은 밤에도 쿵쾅거리며 뛰어다니는 발소리를 이해할 수 있는 시절은 이미 지났다. 다들 각자의 생활 패턴에 적응하며 살고 있고 주택보다 아파트 살이가 더 많은 요즘 타인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는 해야 하지 않을까. 찬바람에 음식물을 버리러 나가기 싫었겠지, 우리 집 욕실을 깨끗이 하고 싶어 세제를 너무 많이 풀었겠지 하고 이해해 주기에는 피해가 너무 컸다. 내가 너무 옹졸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하다가도 마주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눈살 찌푸리게 되는 내가 미워진다.


답답해서 어디 하소연할 창구도 없는 참에 노크 소리는 오늘 내 글을 열어주었다. 두서없지만 속으로 앓기에는 답답했는데 마침 잘 되었다고 생각하는 참이다. 나는 절대로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일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도 어떤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혹은 망설여지는 무언가 있을 때에는 한 번은 더 골똘히 생각할 여유를 가져야지 다짐하게 된다. 이번 일로 얻은 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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