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콥 본 감독, <Bad Milo!(2013)>, 85분
봄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온다.(아니 황사황사 불어온다 ㅠ) 겨울 내내 몸에 지방을 쌓았건만 봄 바람이 부니 입맛이 더 돈다. 살랑거리는 바람에 맨 다리로 걷고 싶은 요즘, 확실히 봄이 왔음을 느낀다. 봄이 오니 겨울 내 시들했던 의욕이 찾아오고 의욕은 더 큰 식욕을 불러내나니, 들판이 푸르러지고 어디든 푸른 잎이 삐죽이 머리를 내미는 지금, 뭘 먹어도 입에 달아 살이 오롯이 오른다.
식욕이 과하면 식탐이 된다. 식욕에는 다른 욕구들에 비해 남다른 점이 있다. 인간의 3대 욕구라면 수면욕, 식욕, 성욕을 들텐데, 인간에게 필수적인 이 욕구들은 각각 조금씩 그 성격을 달리한다. 가장 기본적 욕구인 수면욕은 상호소통적이지 않다. 철저히 개인에 국한된 욕구로, 그것이 '탐'이 되어도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정죄되지 않는다. 성욕은 타인과의 소통이 필수적이나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내밀한 성격을 가진다. 게다가 이것이 '탐'이 되는 것은 많은 위험을 수반한다.
식욕은 어떤가. 식욕은 개인적인 욕구이지만 외부의 시선과 소통한다. 타인의 식욕은 나의 식욕을 자극하고 탐욕스러운 식욕은 그가 가진 다른 욕구들까지도 들여다 보게 하는 거울이 된다. 탐욕스러운 수면욕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탐욕스러운 식욕은 종종 눈에 띈다.
유달리 눈에 띄는 식욕을 담은 영화들이 꽤 있다. 멕시코 작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1992>, 이자크 디네센 원작의 <바베트의 만찬, 1987>, 조안 해리스 원작의 <초콜릿, 2000> 등이 그렇다. 식욕을 통해 인간의 본질과 욕망의 논리를 그려낸 훌륭한 작품들이다. 대개는 영화가 원작 소설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은데, 개인적으로는 소설보다 영화가 더 좋았던 몇 안되는 작품이었다.
이번엔 특별히? 욕망을 다루는 방식이 조금 남다른 영화 한편을 소개하려 한다. 전혀 다른 식욕을 가진, 보다 욕망에 충실하며 투쟁적인, 비유 따위없이 몹시도 저돌적으로 내 안의 욕망덩어리를 다룬 영화, 이름하여 <엉덩이 요정 마일로(Bad Milo!, 2013)다. 인간의 대장 어디쯤에 살다가 특수한 상황에 처하면 엉덩이를 비집고 나와 왕성한 식욕을 선보이는 요정? 마일로와 그 주인의 이야기, 이 영화 제1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선보였을만큼 유니크하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주인공 던컨은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상사는 마치 나를 괴롭히기 위해 출근하는 사람같고, 엄마의 잔소리는 하늘을 찌른다. 엄마의 남자친구라는 작자는 미친 사람같고 아빠는 가정에 무심한 게으름팽이다(뱅이로는 뭔가 부족, 놈팽이와 합성해보자). 착하고 순진한 얼굴로 아이와 가정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며 은근히 스트레스를 주는 부인까지. 스트레스가 쌓일수록 던컨은 심한 복통에 시달린다. 통증의 정도가 심해지자 그는 치료를 위해 최면치료사를 찾는다. 그렇게 찾아간 최면치료사는 뭔가 미덥지 못하고, 심지어 약간 맛이 가 보인다. 어쨌든 그를 통해, 통증의 원인인, 자신의 위장 속에 사는 난폭하면서 은근 귀여운? 요정 ‘마일로’와 마주하게 된다. 악동 마일로는 던컨의 위장에 살다(대장인가, 어디든 ㅋ) 주인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엄청난 통증과 함께 엉덩이를 비집고 나와 스트레스의 원인에게 곧장 달려가 날카로운 이빨로 원인을 갉아먹어버린다. 주인에게는 온순하지만 주인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대상에겐 어떤 고려도, 망설임도 없이 달려가 제거? 해 버리는 고마운? 녀석. 하지만 대부분 스트레스의 원인이란, 가장 신경 쓰이는, 마음을 두고 보살펴야 하는 상대이므로, 마일로의 해소방법은 던컨에게는 재난의 다름아니다.
어쩌면 자신의 가장 솔직한 욕망의 결정체인 마일로를 말리러 다니는 던컨을 보며, 관객들은 참아왔던 욕망이 눈 앞에서 발현되는 모습에 전율하게 될지 모르겠다. 마음으로 수십번도 뒷통수를 후려쳤을지 모를(저는 아닙니다만 ㅋㅋ) 상사의 피투성이가 된 모습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문제의 해결은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임을 던킨도, 우리도 알고 있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원인들을 먹어치우려 돌진하는 마일로는 실은 던컨 자신이며 던컨의 욕망 자체다. 날뛰는 자신의 욕망을 잠잠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욕망을 배출한 자기 자신 외에는 없다. 내면의 검은? 욕망과 매일 대면하며 싸워 이기는? 우리의 모습이 그런 던컨의 모습과 포개어진다.
스트레스의 원인을 없애버리려는 던컨 내면의 깊숙한 욕망인 마일로는 그의 위장 속에서 똘똘 뭉쳐 엉덩이 밖으로 나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한다. 이 가시화된 욕망과 가장 치열하게 싸우며, 욕망을 말려야 하는 사람이 다름아닌 던컨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아이러니하다. 마일로를 저지하려는 던컨의 사투가 너무나도 딱하고 우스워서, 그리로 마일로의 행색?이 너무도 조악해서 우리는 배꼽을 쥐지 않을 수 없다. 엉덩이 요정의 배출?이 실은 가족내력인 것도 경악스럽다. ㅋ (이건 스포일러 ㅋㅋ)
사는 건 8할이 고苦이지만, 어찌 욕망대로만 살 수 있으랴. ㅋ 그저 이렇게 마일로를 보고 한바탕 웃고나면, 진저리 나던 일들을 그저 웃어 넘길 수 있겠다 싶어진다. 이게 삶이니까, 그리고 삶은 계속되는것이니까 말이다. 다시 한주를 시작하는 지금, 마일로를 떠 올리며 크게 한번 웃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