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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남은 것

야론 질버먼 감독, <마지막 4중주(2012)>

by 영롱
영화<마지막 4중주>의 포스터, 마지막일지 모르는 그들의 협주(사진출처 : Daum 영화)


현악4중주를 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인 영화라니 부담된다. 근데 이 영화, 음악을 잘 몰라도 괜찮다. 음악을 몰라도 사람 사는 모양은 다 비슷하니까. 화가 나는 시점, 약해지는 순간, 인정받고 싶은 마음, 내 편에 대한 욕망, 부모의 애정에 대한 결핍 등 등. 그래서 이 영화 감정을 잔뜩 이입해서 볼 수 있다.


<마지막 4중주(A Late Quartet, 2012>는 25년째 '푸가'라는 이름으로 현악 4중주단을 이끌어온 네사람, 피터 미첼(크리스토퍼 월켄), 로버트 겔버트(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줄리엣 겔버트(캐서린 키너), 대니얼 러너(마크 아이반니)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25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을 앞두고, 그들의 정신적 지주인 첼리스트 피터가 파킨슨병 초기진단을 받으면서 혼란에 빠진다.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삶이 맞닿아 있는 그들. 그간에 숨겨온 감정들이 밖으로 나오며 그들 인생과 음악에 있어 최대의 위기를 맞는다. 엄마와 딸이라는 고질적?으로 문제를 낳을 수 밖에 없는 관계, 사랑받지 못하는 남편, 아내를 잃은 슬픔, 자기 감성이 없는 음악가(남의 슬픔은 공감하지만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고 토로하는 음악가라니), 그들 각자의 위기와 아픔, 그 숨겨진 감정들은 아침드라마 저리 가라다. 피터의 파킨슨병으로 마지막 4중주가 되어버린 그들.


어찌 보면 평온한 관계에 균열이 생기고 균열이 깊어지고 다시 봉합되는 과정은 흔히 영화에 등장하는 기승전결이나, 음악이 있고 그 가운데 휴지가 있고 또 분명한 캐릭터가 있어서 이 영화는 한 층 더 깊이를 갖는다. 중간 중간의 영상적 휴지는 음악적이어서 보는 이들로 잠시 멈춰 서서 그 느낌을 곱씹을 수 있게 한다. 영화를 보며 울컥 하고 감격하게 되거나 왈칵하고 눈물이 나올뻔하거나 그런 순간들이 종종 있었다.


그 울컥하는 심정은 아마도 인간에 대한 연민인 것 같다. 왜 늘 끝까지 가는건지. 왜 아닌 걸 알면서 끝까지 가보는 건지. 그 우매한 욕망을 공감하는 똑같이 어리석은 우리 말이다. 삶을 뒤흔드는 요소들을 지탱하지 못하니 마음은 날로 약해지고, 그 허한 마음을 채우려 주저 없이 그릇된 선택을 하고만다. 그리고 다시 뼈 속 깊이 후회하기를 반복한다. 잘못을 저지르고 후회하고 다시 바로잡는 것, 자체가 어쩌면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다음 날 해가 밝은 후에야 비로소 정신이 들고, 무엇이 중한지 끊임없이 이야기해 주어야 앞이 보이고 제자리를 알아본다.


한 가지에 모든 걸 거는 사람들의 모습을 우리는(?) 존경한다. 그들의 삶은 무언가 다를 것 같고 절대로 흔들리지 않고, 절대 타협하지 않고 지켜야 할 것 들을 지켜낼 것 같다. 하지만 여기 음악에 자신의 삶을 모두 받쳐온,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는 이 사람들도 지금의 우리와 다르지 않다. 자신의 삶에 대한 자부심에 의미를 부여하고, 꼭 지켜야 하는, 지키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들의 삶에도 균열과 질투가 스며든다. 어떤 삶이든 허부적 될 수 밖에(struggle) 없구나 싶어서 또 울컥.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어쨌든 쿼텟quartet은 남았고 음악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엔 무엇이 있나


무엇이 남으면 좋을까. 음악가의 삶에서 지켜내야 하는 것이 팀이고 그들의 음악이라면, 우리의 삶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 지키고 싶은게 없는 삶이란 사실 얼마나 따분한가. 모든 영웅들은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게 있었고 그것을 위해 움직였고 그것으로 인해 살아갔다. 영웅들까지 들먹이니 좀 거창한 것 같기는 하지만 25년을 함께 하며 생긴 그들의 균열이 결국엔 음악으로 봉합된 것 처럼, 우리의 삶에도 봉합을 위한 절대적인 그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 무엇, 여기서는 그들의 음악, 그것은 애초의 갈등과 슬픔을 제거하는 것으로서 작동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 일상에 스민 슬픔과 갈등을 지고서 그것들이 그 무엇(음악)의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 그러므로써 그들은 아마도 더 깊어지고 진해진 그들의 음악을 전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도 그것으로 부터 짙은 위로를 받는다.


삶의 위기와 변화는 누구에게나 인다. 우리가 무엇을 하건 숨만 쉬어도 인생은 흐르고 갈등은 빚어지는 것 같다. 그 속에서 바둥거리고 무엇이 중한지 깨닫고 부대끼고 하는 것이 자아내는 감동을 <마지막 4중주>를 보며 흠뻑 느꼈다. 영화는 분명한 캐릭터, 그들의 악기처럼 분명한 포지션과 세대의 구분, 음악이라는 소재와 배경, 그리고 그들 사이의 복잡한 관계들로 지루할 틈이 없다. 그리고 첫 장면이 마지막 장면으로 수렴될 때의 그 감동은 직접 느껴 보기를 바란다.


그들에게는 지켜야할 쿼텟과 그들의 음악이 있다(사진출처 :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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