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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Feb 01. 2018

전복된 일상의 회복을 꿈꾸며

김태형 연출, 연극<더 헬멧>

출처 : 아이엠컬쳐


연극<더 헬멧>은 새로운 형식과 새로운 형태에 대한 목마름에서 출발하여, 독창적인 ‘형식’에 우수한 드라마를 담아 관객으로 하여금 공감하게 하겠다는 확신으로 기획되었다. 그렇지 않은 연극이 어디 있겠냐만은, 제작자와 작가, 연출가의 언어 속에 그 치열한 논쟁과 고민의 흔적들이 가득 담겨있다.      


새로운 형식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만큼, 무대를 구분 짓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서로의 공간에 영향을 주기 위한 다양한 장치들, 이를 위해 활용한 소리와 조명의 쓰임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연극은 두 개의 시공간, 1987년 대한민국의 서울과 2017년 시리아의 알레포를 무대로 한다. 각각의 시공간은 다시 두 개의 공간, 빅룸과 스몰룸으로 나뉘고, 관객은 총 4개의 룸 중 하나의 룸을 선택하여 관람할 수 있다. 각각의 룸은 각각의 연극이자 또 연결되어 있는 극으로 관객은 그 모두를 관람해도 되고, 하나의 연극만을 보아도 된다.      


1987년의 서울, 민주화를 위해 운동하던 청년들이 전경을 피해 지하 서점에 숨어든다. 그들을 좇아 들어온 전경들 때문에 꼼짝없이 갇혀 오도가도 못하는 학생들의 에피소드가 스몰룸에서, 그들을 찾는 전경들이 서점 주인과 신경전을 벌이는, 백골단의 에피소드가 빅룸에서 펼쳐진다.


2017년 시리아 알레포, 축구선수 호달두와 중동 최고의 선수 오마르 알 소마를 좋아하는 소년은 옆집에 이사 온 아저씨와 친구하고 싶다. 말을 붙여보지만 좀처럼 놀아주지 않는 아저씨, 사연이 많은 듯, 이 사내는 그의 자녀로 보이는 어린 소년의 영상을 휴대전화로 넋을 놓고 보고 있다. 폭격이 쏟아지고 두 공간은 빅룸과 스몰룸으로 구분된다. 스몰룸에 갇힌 소년과 폭격으로 갇힌 이들을 찾으러 다니는 화이트 헬멧(반정부군)이 빅룸으로 들어오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나의 경우, 2017년 시리아 알레포의 빅룸에 있었다.


빅룸의 사람들은 내전으로 인해 가족들을 잃고 그 고통 속에서 작은 희망을 구하고자, 생존자를 구조하는 화이트 헬멧으로 활동한다. 무너진 건물에서 구조된 남자 역시 가족을 잃었다. 내전의 책임을 반정부군에 돌리는 정부군인 그는 복수를 원한다. 그 감정의 골은 너무나 깊고, 복수의 댓가는 누군가의 희생을 요한다. 이들의 상황은 너무도 처절해서, 또 너무도 고통스러워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이 편 아니면 저 편에 선 이들은, 시리아 국민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축구를 사랑하고, 같은 신을 믿으며, 같은 언어를 쓴다, 그리고 모두가 꼭 같이 자신의 가족을 사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편과 저 편의 이 절대 허물수 없을 것 같은 지금의 경계는, 실은 그들이 진정으로 지키고자 하는 것과는 무관해보인다,


극이 끝을 향해 갈때, 그들의 공간은 마치 환상에 속한 것 같이, 조명이 일렁이고, 비눗방울이 날리며, 그들 사이의 벽이 무너지고 공간이 하나 된다. 등장인물들은 경계가 무너져 하나가 된 공간에서 보이지 않는 공을 슬로우 모션으로 주고 받는다. 그들의 동작은 너무 느려서 축구라기 보다 하나의 춤 같았다. 마치 그들은 무너진 현재를, (축구를 함께 즐기며 웃고 떠들며 어른이 되는)일상을 복원하려, 기원을 가득 담은 기도의 춤을, 느리고 느린 축구를 하는 것 같다.  보이지 않는 공이 그들에게는 만질 수 없는  일상인 것만 같아 슬프다.


스몰룸에서 죽어버린, 보는 이에 따라서는 구원된, 어린 아이의 소원은 그저 어른이 되는 것이다. 어른이 되는 일, 너무도 당연해서 꿈꿔본 적 없는 어른이 되는 일상이 아이에게는 이룰 수 없는 꿈이다. 당황스러운 것은 이런 비일상성이 가득한 대사가 너무나 익숙했다는 점이다. 얼마나 우리의 현재가 일상성을 잃었는지 전쟁 한복판의 소년의 고백이, 우리의 일상과 연결된 것 같이 느껴졌다. 며칠 전 보복 방화로 목숨을 잃은 모녀들이 기억났고, 그들의 일상 속에서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생명을 갈취당한 많은 사건들이 떠올랐다.      


끔찍해서 놀라야 하는 일들이 일상이 되고, 당연하게 지켜져야 할 생명과 도덕은 꿈이 되는 세계에 우리는 점점 더 익숙해진다. 이 전복된 일상이 다시 일상이 되게 하려면, 끝나지 않은 전쟁은 물론이고, 매일 같이 겪는 크고 작은 일상의 전투에서, 행해지는 혐오와 폭력의 말과 행동들에, 심지어는 방화와 테러에도 대항해야 한다. 그래야 한다.


실제 시리아 내전은 무대에서 경험한 것과 같이, 많은 사상자와 난민을 냈고, 무대에 다 담을 수 없는 복잡한 정치적 이슈와 양상을 보이며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사실에 지금 다시 또 마음이 무거워 진다.




출처 : 아이엠컬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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