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다. 사랑이 애틋해진다는 것은 그런 것 같다. 건강하게 곁을 지켜주고 싶은 것.
한 때는 연애를 하면서도 공기 중으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했다.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그냥 공기중으로 소실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감정적으로 소진되는 주변 상황들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다. 물론 생각 뿐이었지만. 어쩌면 당시에는 책임감이라는 게 별로 없는 삶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배가 부른 상태. 크게 필요한 것도, 욕망하는 것도 없다보니 살아감의 이유를 크게 발견하지 못하겠던 그런 20대.
서른이 되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고 부터는 그럴 여유가 없어졌다. 그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나 자신을 잃지 않으려 낑낑거리며 지냈던 것 같다. 연애도 늘 그래서 어렵기만 했다. 연애는 쉽게 시작되었지만 늘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채 끝이 나곤했다. 그 패턴이 지겨워서 연애를 그만하기로 한지 일년정도 흐른 때에 지금의 신랑을 만났다. 그와의 만남도 처음에는 그저그런, 이전의 연애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듯 했지만 점차 무언가 다름을 느꼈다. 그 다름이라는 것을 정의한다면, 나 자신이 좀 달랐던 것 같다. 이전에 연애할때는 그토록 사랑했으면서도 두사람의 끝이 결국에는 이별일거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그런탓에 늘 결론이 정해져 있었다. 연애에서 마저도 힘든 상황을 끌고 가고 싶지 않았던 나는, 이런저런 이유를 찾으며 끝을 생각했다. 그를 만나면서는 이상하게도, 투닥거릴 때 마저도 뭔가 헤어질 것 같지가 않았다. 왠지 모르게 그와는 계속 함께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서로 비슷한 구석이 별로 없었는데도, 두사람의 끝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건 그의 변화라기 보다 나의 변화.
그의 모습 속에서 내가 정착해도 좋을 근거들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정직하고 강직한 면. 그리고 심플한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내 안에 있는 따뜻함을 발견해주고 귀하게 여겨주는 것에 나는 감격했다. 그거면 될 것 같았다. 이런 복잡하고 치열하고 이기적인 세상 속에서 온전히 평안해질 수 있는 한 곳을 찾은 기분.
그렇게 결혼을 하고 이제 만 2년이 훌쩍 지났다. 그리고 사랑이 날마다 더 깊어짐을 느낀다. 서로에 대한 신뢰, 그의 선함과 사랑에 대한 확신이 어떤 싸움도 무의미하게 만든다. 우리 관계가 완벽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우리 관계에 만족하고 있다는 말이다. 감정적으로 충분한 기분. 그런 지금이라 내가 없이 외로울 그를 상상하기도 싫다. 텅 빈 집에 홀로 있을 그를 조금만 떠올려도 눈물이 날 것만 같다. 대단히 잘해주는 것도 아니면서, 괜히 애틋하다.
나는 스스로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랑이 많아서, 그리고 사랑을 할때 너무도 깊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나라서, 그런 사랑을 감당할 수 있을, 그렇게 끝까지 사랑할 가치가 있는, 실컷 사랑해도 좋을 그런 사람을 찾고 싶었다. 그토록 오랜 기도 속에서 나는 깊이 사랑해도 좋을 짝꿍을 만났음에 안도한다. 다들 쉽게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하는 일들이, 내게는 하나도 쉬운게 없다는 사실에 가끔 속이 상하기도 했지만, 각자의 템포가 있고, 어떤 삶이든 양과 음이 모두 있다는 것도 지금은 어렴풋이 알겠다. 둘도, 혼자도 그리 나쁘지 않다. 그곳이 안전하고 평안한 곳이기만 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