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자원봉사이음
다음은 자원봉사이음의 이음큐레이션에 기고한 글이다.
모든 조직이 고민한다. 우리 기록, 어떻게 어디서 부터 관리해야 할지.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조직이라면 그래도 나름대로 기록관리를 하고 있는 곳이다. 대개는 웹드라이브나 나스에, 더러는 캐비넷에 연도별로, 담당자별로 기록들이 나름 체계를 가지고 정리되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기록관리를 하고 있는 것 같지 않고 찜찜한 기분이 계속 든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예상하건데, 그것은 업무과정 중의 기록과 아카이빙 기록이 이원화되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일반적으로 공공기관에서의 기록관리체계라 함은 업무관리 단계에서의 기록이 기록관(기록관리센터?)으로 넘어오고, 기록관에서 선별된 기록이 영구보존을 위해 아카이브로 넘어오는 일련의 과정을 가진다. 비영리민간단체는 업무와 기록관리, 아카이브의 업무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더욱이 담당자도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 조직이 과연 기록관리를, 아카이브를 관리하고 있는지 질문하게 되는 것이다. 기록을 정리하고 있지만 정리된 것 같지 않고, 현재 이용중인 기록, 사용이 예상되는 기록과 보존용 역사기록이 혼재되어 드라이브에 뒤엉켜있어서 더 그러하다.
비영리민간단체로서 아카이빙을 어디서 부터 시작해야 할지 묻는다면, 다음과 같은 흐름을 따라가 볼 것을 권한다. 이것은 정답이 아니라 비영리민간단체에서 시도해봄직한 제안의 다름아니다.
먼저는 모든 일이 그렇듯 우리 상황을 아는 것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이름하여 진단 단계다. 무엇을 진단해야 하나.
우선은 이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왜 아카이브를 하려고 하는가? 왜 아카이브가 필요한가? 하고 물어본다. 80년대 후반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다양한 분야의 시민운동단체들이 생겨나고, 90년대 자원봉사활동과 기부문화가 확산되기 시작하였으니, 비영리민간단체들의 역사도 길게는 40년에서 3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셈이다. 시간이 쌓이고 기록도 쌓여만 가는데, 이렇게 쌓기만 하는 것이 과연 맞는가 하는 의문과 더불어 '그 다음'에 대한 질문이 생겨나게 된다.
이른 바 기록은 많지만 정리된 역사가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아카이브가 필요한 것은 수많은 기록 속에서 어떤 기록을 영구히 남길 것인지를 고민하고, 그 남겨진 기록으로 우리 조직의 이야기를 전하려는 시도로서, 오래된 조직이라면 이미 당면해 있는 과제이다. 막연히 아카이브를 해야할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쌓여있는 시간과 기록의 무게를 인지한 상태라는 알림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아카이브를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록을 보존해줄 곳에 위탁할 수도 있고, 우리 조직의 뜻을 이어갈 연대조직에 그것이 이어지도록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지난 시간의 노하우와 핵심적인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그 기억들은 시민 입장에서도 너무 소중한 우리 공동체의 유산같다.
그래서 아카이브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작업은 비영리민간단체로서의 우리 조직이 어떤 조직인지, 무엇을 기억하려는 기관인지 정의해 보는 것이다. 우리 조직의 설립배경, 미션, 비전, 핵심가치를 저변에 깔고, 그래서 우리 조직의 기록이 무엇을 사람들과 공유하며 기억할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본다. 이를 테면 이런 문장이 된다.
우리 ~ 조직의 기록은 ~ 활동을 통해 ~변화의 과정을 증언하는 공익적 기억이다.
이 문장을 핵심관계자들과 같이 쓴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럴 시간이 없다면 우리 조직의 산 증인, 가장 오래 우리 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또는 그 한 사람이 조직의 무게를 감당하며 정의해본다. 그 종이를 탕비실에 붙여놓고, 조직원들에게 댓글 달듯이 추가로 정의를 써보게 해도 좋다. 그렇게 기준으로 삼을, 훗날 조정이 될지라도 기준점이 되어줄 하나의 문장을 만든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조직의 기록관리현황도 종이에(?) 그려본다. 누가 이 업무를 전담해서 할 수 있는지도 아주 중요하다. 작은 조직일 수록 대표 스스로가 그 역할을 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가장 오래 조직에 몸담은 사람이 적합하다. 조직의 맥락과 남겨지지 않는 서사, 찾아야 될 기록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기록에 대해서 정리해본다.
기록을 만드는 사람이 누구인지 : 업무담당자, 자원봉사자, 활동처 관계자, 공무원, 대표, 이사장, 위원 등등
기록의 주제적 유형이 무엇인지 : 행정기록, 사업기록, 운동기록, 연대기록 등등
기록의 물리적 유형/형태는 어떤 것인지 : 사진, 동영상, 문서, 간행물, 편지 등등
보존매체 같은 것들을 정리해본다 : 클라우드, 나스, 서고, 외장하드, 캐비넷 등등
정보보안과 관련한 것도 살펴본다 : 개인정보와 초상권, 저작권에 관한 이슈가 없는지를 돌아본다
그렇게 현재 우리 상황이 정리가 되었다면 구체적으로 아카이빙 파일럿 작업을 해볼 수 있다.
기준을 잡는 것은 무엇을 반드시 남길 것인지, 무엇은 선택적으로 남길 것인지, 누가 언제 어떻게 남기거나 수집할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다.
막막하다면 먼저 조직의 연보를 꺼내본다.
연보를 꺼내두고, 그 연보에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의미 중심, 조직의 전환점 중심, 사람 중심의 이벤트들을 채워넣는다. 우리 조직이 우리 사회에서, 우리 지역에서 어떤 정체성과 기억이 될지를 고려하며 꼭 넣어야 할 사건을 채워넣는 작업을 조직원 들과 함께 한다면, 그것이 우리가 기록을 수집할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 때에 대표와 조직원들은 함께 이런 질문에 대해서도 답해보아야 한다.
우리 단체가 그 n년의 시간 동안 무엇을 증명해왔는가
이에 대해 답변을 한문장으로 정의해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의미와 활동을 축약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거기에는 우리 활동의 업무기능과 역할이 명시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더 유용하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가지고 있는 기록의 목록을 모아본다.
이를 테면 공문서의 목록, 홈페이지가 있다면 홈페이지에서 관리하는 데이터베이스의 목록, 클라우드 또는 나스의 업무폴더의 목록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우리 조직과 관계 맺은 인물, 단체의 유형과 단체명, 실제 인물들을 목록화해보거나, 기존의 목록들을 모아본다. 예를 들면 이사, 위원 명단이 연차별로 있으면 좋다. 자원봉사단체와 자원봉사자명단 등도 이에 해당한다.
소장하고 있는 사진과 영상, 문서의 실물들의 보존위치와 분류체계를 살펴보고 그 내용과 양도 가늠해보면 좋다.
이렇게 소장기록이 파악이 조금 되면, 전체 기록의 범위와 양을 가늠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할지 막막하다. 그럴 때 우리가 정한 기준을 다시 들여다 본다.
앞서 정리한 연보에서 하나의 이벤트를 선정한다. 우리가 가장 먼저 작업해야 할 이벤트를 말이다. 우리 조직의 역사에서 꼭 기억해야 할, 가정 먼저 정리해야할 활동과 사람을 선정해 보고 그것을 기록하기 위한 설계를 해보는 것이다. 그 이벤트를 보여주기위해 대표와 조직원들이 마인드맵을 그려볼 수 있다. 그 마인드맵을 서로 비교해서 해당 이벤트를 기록하기 위한 최적의 마인드맵을 같이 조율한다. 그 마인드맵이 가리키는 주제나 분류의 하위에 그것을 보여주는 기록이 무엇일지를 적어보고, 해당 기록을 모으고, 그것을 목록화하고, 보존할 매체를 선택해 정리해내면 일단은 성공이다. 글은 쉽지만 실행은 너무나도 지난한 작업임은 확실하다.
그것을 목록으로 남길 때 ISAD(G) (General International Standard Archival Description)와 같은 기록기술항목을 활용하면 좋다. 기술항목이란 하나의 기록에 대해 하위정보를 줄때 어떤 항목으로 설명할 것인지를 의미한다. 다음은 ISAD(G)를 참고하여 실제 필요한 항목들만 선별해 본 것이니, 초기 목록 작성에 적용해 보아도 좋다.
식별번호 : 각 기록에 고유번호를 붙이는 것
제목 : 기록에 이름을 붙이는 것
만든이 : 해당 기록을 만든 사람의 이름 또는 조직명
만든날 : 해당 기록이 생성된 날짜, 생산일
내용과 범위 : 해당 기록을 설명하는 글, 행사사진이라면 그 행사에 대한 설명과 사진의 내용, 사진의 장소, 사진의 의미 등을 기록
기술계층 : 어려울 수 있는데, 이 기록의 맥락적 위치를 써주는 것이다. 우리가 전체 기록을 관리하는 체계로서 업무 기능과 분류체계 등이 고려대상이다.
크기 및 매체 : 파일의 크기나 쪽수, 건수 등을 기록한다.
생산기관 : 해당 기록의 저작권 소유 기관, 우리 조직, 부서명, 타 기관이 될 수도 있다.
기술일 : 지금 해당 항목을 작성한 날짜
기술자 : 지금 해당 항목을 작성한 사람
공개여부 : 공개인지 비공개인지 부분공개인지 기록
비공개사유 : 비공개나 부분공개라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기록(공개되는 항목 아님)
주기 : 위의 항목과 무관하지만 남겨야 하는 내용의 기록(공개되는 항목 아님)
이렇게 관리된 기초 목록이 있다면 여러모로 두루두루 활용가능하다. 이 작업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카이브할, 소장가치가 있는 이벤트에 대한 기록만을 이렇게 정리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벤트들의 목록과 기록이 쌓이면 그것을 서비스한다면 아카이브를 하고 있다고 할만하다. 몇 십 주년을 맞이하면 의례 제작하는 백서 작업에도 유용한 방법이다. 이런 결과물들이 쌓이면 후에 책자나 영상, 전시 등 다방면으로 사용할 수 있는 원천 소스(One Source Multi Use)가 마련되는 것이다.
이 포스팅이 모든 것을 시원하게 해결해주진 못하겠지만, 아카이브와 관련한 무언가를 해볼 때 참고가 될만한 글이 되기를 바란다.
[출처] [이음큐레이션 VOL.2] 비영리민간단체 아카이브를 시작하려는 이에게|작성자 자원봉사이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