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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유수집가 Dec 07. 2017

이별의 거리를 좁히다

"여기서 헤어지자!" 유치원 바로 앞 횡단보도에서 아이가 내게 말했다. 혼자서 길을 건너가겠단다. 일곱 살인데 충분히 할 수 있지. 그것도 아파트 단지 안 횡단보도인데. 머리는 긍정하면서도 마음은 그러지를 못해 잔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차 오나 안 오나 잘 살피고. 양쪽 다 보고." 아이는 씩씩하게 길을 건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유치원으로 간다. "엄마한테 인사는 해야지" 애달픈 내 목소리에 시크하게 손만 흔들 뿐이다. 횡단보도 하나 사이가 우리 이별의 적당한 거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계단을 내려서야 만나는 횡단보도가 아닌 계단 위에서 헤어지자고 한다. 다음 날은 아파트 로비에서 그다음 날은 현관에서 헤어지기를 원했다. 용감해진 아이를 아직 믿을 수 없는 나는 아이의 요청대로 이별을 하고 몰래 그 뒤를 밟았다. 들키지 않기 위해 나무 뒤로 몸을 낮춰 걸으니 지나가던 초등학생이 묻더라. "아줌마, 왜 그래요?" 


처음에는 혼자 가겠다는 아이가 대견했다. 18개월 동안 혼자 걷지 못해 애를 태웠던 모습이 떠올랐다. 발달이 너무 늦는 것은 아닌지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있는데 진료실 의자를 잡고 서 있던 아이가 갑자기 혼자 첫 발을 떼던 생각이 났다. 그때의 벅찼던 마음이 되살아났다. 아이 역시 유치원에 혼자 온 자신이 대견했던지 선생님께 엄청 자랑을 한 모양이었다. "오늘 혼자 왔었다면서요?" 아이를 데리러 온 나를 향해 선생님은 놀라며 물었다. 겁 많은 아이의 용감한 도전에 놀라움 반, 혼자 보낸 엄마의 배포에 놀라움 반이지 않았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이는 이제 데리러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혼자 집에 올 수도 있단다. 아침의 대견했던 마음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서운했다.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하기에 용기를 낸 육아휴직이었다. 그런데 정작 아이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다니. 이게 뭔가 싶었다. 


언제까지 내가 데려다주고 데리고 올 수도 없는 노릇. 당연한 과정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매일 다닌 길을 혼자 가겠다는 것뿐이다. 먼 거리도 아니고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유치원에 가겠다는 것뿐이다. 머리는 알겠는데 마음이 모르겠다. 당연한 과정 중 하나라도 아직은 아닌 것 같다. 한없이 보드라운 아이의 손을 놓아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엄마는 유치원에 너무 같이 가고 싶은데 엄마 부탁 좀 들어주면 안 될까?" 아이에게 사정을 했다. 왜냐고 이유를 묻는 아이에게 너무 사랑해서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다고 애절하게 말했다. "집에서 같이 있잖아. 잠도 같이 자고." 아이는 쉽게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사정이 안되면 다음 단계는 협박이다. "엄마를 자꾸 필요 없다고 하면 다시 회사간다." 치사한 엄마도 아이에게 쉽사리 통하지 않는다. 아이는 너무 당당하게 대답한다. "그래라."


오늘 아침도 여전히 아이는 현관에서 헤어지자고 한다. 안 되겠다며 너무 추우니 같이 가야 한다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아이를 따라나섰다. 아파트 로비를 벗어나자 아이가 잠시 멈짓한다. "다섯 마리 코끼리 노래 부르면서 같이 가자." 같이 가기는 가는데 조건이 있는 거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등원 시간대라 오가는 사람이 많은 단지 안이었지만 다 괜찮았다. "한 마리 코끼리가 거미줄에 걸렸네~" 한 마리는 아이, 두 마리는 나, 다시 세 마리는 아이. 다섯 마리 코끼리까지 번갈아 부르며 걸었다.


가사 내용을 충분히 살려 신나게 부르니 아이는 대만족. 한 번 더 부르자고 한다. 두 번째 노래가 끝나고 나니 우리는 유치원 계단 앞에 서 있었다. "엄마, 오늘은 유치원 안까지 들어와도 돼." 혼자 가기를 좋아하기 전에도 유치원 계단에서 헤어지기를 원했던 아이였다. 유치원 안까지 들어오라고 하는 건 아주 드문 경우. 코끼리 덕분에 아이와 이별의 거리가 아주 짧아졌다. 내일 아침에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까. 이러다 아파트 단지에 소문이 나겠다. 유치원 가는 길에 매일 노래 부르는 모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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