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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유수집가 Dec 05. 2017

다시 올빼미형 인간이 되다

짝이 내 팔을 콕콕 찌른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쳐다보니 앞으로 고갯짓을 한다. 긴 지휘봉으로 나를 가리키고 있는 선생님이 보였다. "뒤로 나가 서 있어." 도저히 맑은 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는 아침 자율학습 시간이었다. 꾸벅꾸벅 조는 것이 일상이었기에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갑자기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다들 나를 보고 있었다. "서서까지 조니 답이 없네. 그냥 들어가!" 고등학교 시절 내 별명은 잠탱이였다.  


대학시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학교 후문에 딱 붙어살았지만 9시 수업을 가기 위해서는 전쟁을 치렀다. 씻지 않고 학교에 갔다가 수업이 끝나고 내려와 다시 씻고 간 적도 많았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오전 수업은 시간표에서 사라졌다. 밤늦게까지 깨어 있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데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너무 힘든 나는 올빼미형 인간이었다. 한때 매스컴에서 아침형 인간이 성공의 척도처럼 오르내릴 때는 굉장히 반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니 어쩔 수 없이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 했다. 분명 9시부터 공식적인 근무 시작인데 7시 30분이면 사무실은 가득 찼다. 8시만 돼도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아야 했다. 신입사원 때는 밤 12시를 넘겨 퇴근한 날이면 의자에 앉아서 자기도 했다. 한밤 중에 늦잠을 잔 꿈을 꾸며 깜짝 놀라 깬 적도 많았다. 올빼미형 인간이 아침형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알람은 필수였다. 혹시 듣지 못할까 봐 5번 반복의 다시울림으로 맞춰야 했다. 


시간이 흐르며 근무환경도 좋아져 출근시간은 점점 9시에 맞춰져 갔다. 그렇다고 내 알람 시간이 늦춰진 것은 아니다. 그 사이 나는 엄마가 되었고 출근 전 챙겨야 할 일은 늘어났다. 여전히 아침형 인간으로 살기 위해 애쓰는 삶이었다. 자기 전 스마트폰 배터리의 잔량과 알람이 맞춰졌는지 확인해야만 했다. 전자파가 걱정되었지만 진동으로 된 스마트폰을 베개 밑에 넣어둔 채 잠이 들었다. 소리보다는 진동이 나를 더 잘 깨웠기 때문이다. 


2005년부터 시작된 알람 인생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육아휴직을 하고 알람을 끈 거다. 눈이 떠지는 시간에 자연스레 눈을 뜨고 싶었다. 원래 내 신체리듬대로 올빼미형 인간으로 살고 싶었다. 애쓰는 삶이 아니라 자연스레 살아지는 삶을 살고 싶었다. 습관은 무섭더라. 처음에는 6시면 눈을 떴고 그다음에는 7시면 눈을 떴다. 더 자고 싶어도 아이가 7시면 일어나 나를 깨웠다. 엄마와 아빠의 출근시간에 맞춰 늘 7시면 일어났던 아이도 습관을 깨기 어려웠다. 


올해 초 유치원 진학 설명회 시간에 원감 선생님이 당부를 했다. 개별적으로 등원하는 아이들은 늦어도 9시 30분까지는 유치원에 도착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우리 아이는 7시 45분이면 유치원에 도착하는데 얼마나 천천히 준비를 하면 9시 30분도 넘을까. 어리석게도 전업맘의 게으름을 탓했다. 역지사지다. 내가 육아휴직을 하고 나서야 9시 30분을 넘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게 됐다. 


늦게 재우는 것도 아니었다. 평소와 같이 늘 9시면 침대에 누웠고 보통 9시 30분이면 아이는 잠이 들었다. 잠드는 시간은 비슷했지만 일어나는 시간은 점점 늦어졌다. 습관의 벽이 무너진 것이다. 요즘은 8시 30분에서 50분 사이에 일어난다. 아이가 스스로 깨기를 기다렸다가 아침을 먹여 집을 나서면 나 역시 9시 30분에 간당간당하게 유치원에 도착하는 날들이 많다. 천천히 준비해서가 아니라 아이의 시간을 기다려준 결과였다. 더 잘 수 있을 줄 알았지만 8시면 일어나는 내가 아이를 깨우면 된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있다. 이전보다 성장 속도가 빨라진 아이를 보면서 원 없이 자는 잠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9시 30분에 아이가 잠이 들면 나는 다시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는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거나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읽는다. 제일 머리가 맑은 밤 시간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된 거다. 언제 자야겠다 시간을 정하지도 않는다. 글이 잘 써지면 오랜 시간 쓰기도 하고 재미있는 글을 만나면 오랜 시간 읽기도 하고 다 귀찮으면 일찍 자기도 한다. 몇 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이 없으니 내 시간을 즐기는 것에도 부담이 없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새벽 1시를 넘기는 일은 거의 없다. 내일 밤에도 나만의 자유로운 시간을 만날 수 있기에 이 밤은 가벼이 보내줄 수 있다. 


알람 하나 껐을 뿐인데 모든 시간의 흐름이 자연스러워졌다. 올빼미형 인간인 내가 기분 좋은 밤을 누릴 수 있게 됐고 알고 보니 잠꾸러기인 아이는 마음껏 자면서 쑥쑥 클 수 있게 됐다. 시간이 자연스레 흐르고 나니 마음도 자연스레 흘렀다. 아이와 놀면서 나만의 시간을 바라고 나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아이에게 미안해하는 마음의 역류가 끝이 났다. 밤 시간 동안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나는 아이와 보내는 시간에는 아이에게 집중한다. 다른 생각에 한 눈 팔지 않고 아이와 눈높이를 맞춰 신나게 논다. 아이가 엄마랑 노는 것이 제일 재미있다고 말할 정도로 말이다. 알람 하나 껐을 뿐인데 나도 아이도 더 행복해졌다. 물론 내가 일어나기 전에 출근하는 남편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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