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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유수집가 Jan 03. 2018

아이가 하자는 대로 놀다

저녁을 먹고 나니 하이디는 내게 '할로윈 100층짜리 집' 놀이를 하자고 한다. '100층짜리 집' 책을 읽고 나서 스스로 생각해낸 놀이다. '100층짜리 집'은 도치가 100층짜리 집 꼭대기에 초대를 받아 100층짜리 집을 한층 한층 올라가는 이야기다. 이 100층짜리 집에는 1~10층까지는 생쥐, 11~20층까지는 다람쥐, 21~30층까지는 개구리처럼 10층 단위로 다른 동물들이 살고 있다. 각기 다른 동물들을 만나며 도치는 재미있는 모험을 하게 된다. 하이디는 100층짜리 집의 특징을 살려 10명의 할로윈 캐릭터 이름을 종이에 적었다. 발레리나, 마녀, 원더우먼, 뱀파이어, 슈퍼 요정, 좀비, 해골, 의사, 슈퍼맨, 생쥐였다. 그리고 자신은 도치가 아닌 지니가 되어 100층에 살고 있는 생쥐 공주인 나를 만나러 오는 놀이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니예요. 1층에 사는 발레리나는 뭐하세요?" 하이디가 물으면 나는 대답을 한다. "1층 발레리나는 발레복을 고르고 있어요." 한 층도 빼놓지 않고 무엇을 하는지 묻고 나는 매번 다른 내용으로 대답을 하는 거다. 발레 공연을 위해 화장을 하고, 배가 고파 밥을 먹고, 발레 연습을 하고, 다리가 아파 쉬고 있고 등등 그 캐릭터에 맞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비슷한 내용을 반복하거나 캐릭터 특징과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를 하면 어김없이 지적을 받는다. 그래도 꾀를 내어 의사는 정형외과, 소아과, 이비인후과 등  진료과를 바꿔가며 10층을 채웠다. 드디어 100층. 그만하자는 내 말에 하이디는 결사반대. 이제는 엄마가 지니를 하고 자신이 할로윈 친구들을 할 차례라고 했다. 그렇게 놀이는 한 번 더 반복된다.  


하이디와 내가 하는 놀이의 90%가 이러한 역할놀이다. 일곱 살이면 역할놀이가 끝날 줄 알았는데 아이의 역할놀이는 디테일이 강해지며 계속 진화하고 있다. 페어리루, 코코밍과 같이 TV 만화 캐릭터를 활용한 역할놀이를 넘어 최근에는 책을 읽으면 그 책의 내용으로 역할놀이를 한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보다도 TV를 보는 것보다도 역할놀이를 더 좋아하는 하이디다. 아이의 놀이 방식에 대해 크게 고민한 적이 없었다. 함께 노는 시간이 늘 부족했기에 하이디의 뜻에 따라 노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육아휴직을 하고 함께 노는 시간이 많아지고 나니 고민이 됐다. 매번 이렇게 역할놀이만 해도 되는 것일까. 


집에서 10분 거리의 장소에서 편해문 작가의 강의가 있다고 했다. 지난 7월 스위스 여행 이후 놀이터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높아져 우리나라의 놀이터를 찾아보면서 알게 된 작가 겸 놀이터 디자이너였다. 강의 주제 역시 '놀이가 밥이다'로 아이와의 놀이에 대한 고민이 있던 내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해줄 것 같았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게 그냥 두는 것'. 편해문 작가의 놀이에 대한 정의였다. 그리고 이 놀이는 10살 무렵까지 가능하니 그때까지만이라도 아이들에게 진정한 놀이를 허락하라고 당부했다. 많은 순간 공감했고 어떤 순간에는 울컥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 고민도 답을 찾았다. 하이디가 하고 싶어 하면 무한반복 역할놀이도 기꺼이 OK 하는 것으로. 


시간이 많아지니 불안도 커졌었다. 셈이 느린 아이인데 이렇게 놀기만 해도 되는 걸까. 소근육 발달이 느려 아직도 글씨를 큼직큼직하게만 쓰는데 이대로 놔둬도 되는 걸까. 그래서 깔깔대며 아이가 재미있어하는 역할놀이가 내심 못마땅했었다. 이 시간에 차라리 수학교구로 놀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셈에 도움이 되는 보드게임이라도 사서 할까 고민을 했었다. 편해문 작가의 말이 맞다. 놀이의 반대는 불안이다. 불안하니 아이의 놀이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 곱지 못했고 그러니 자꾸 짜증이 났다. 게다가 역할놀이는 점점 수준이 높아져 내게도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해 빨리 끝내고 싶은 놀이가 됐다. 


다시 처음을 생각한다. 내가 왜 일곱 살 가을에 육아휴직을 하기로 했는지. 대부분 사람들의 말처럼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미리 공부 습관을 갖게 하고 하나라도 더 알고 입학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음을. 숙제도 없고 결석도 자유로운 유치원 시절에 아이와 더 재미있게 놀기 위해 선택한 휴직임을 기억한다. 불안이 물러가고 나니 에너지가 고스란히 남았다. 이제까지 일에 소진됐던 에너지를 지금부터는 아이와의 놀이에 쏟으면 된다. 변신한 역할에 너무 깊은 몰입을 요구당해 쉽지는 않지만 지금의 에너지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상황. 공주, 탐험가, 우주비행사, 마술사 등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할 인생을 상상하며 아이가 하자는 대로 즐겁게 놀기로 한다. 노는 게 남는 것인 어린 시절을 아이가 온전히 누리도록 하는 것, 지금 내 최대 과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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