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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유수집가 Jan 09. 2018

용기를 내다

하이디는 다섯 살이 되며 어린이집 최고 형님반이 되었다. 어린이집 3년 차. 반이 바뀌었다고 해도 별도의 적응기간이 필요 없는 어린이집 베테랑이었다. 아무 걱정이 없는 아침이었다. 평소와 비슷한 시간에 집을 나서 평소와 비슷한 시간에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하지만 차 문이 열리는 순간 아이는 평소와 달라져 있었다. 어린이집 주차장 바닥에 주저앉아 신발을 벗어던지며 집에 가겠다고 대성통곡을 했다. 달래도 달래도 끝나지 않는 울음에 남편은 하이디를 버리다시피 하고 어린이집을 빠져나왔단다. 주차장을 무사히 빠져나왔다고 안심하면 어린이집 문을 열자마다 대성통곡을 시작했고, 현관까지 잘 도착했어도 신발을 벗으면서 대성통곡을 했다. 


교실만 바뀐 거다. 2명의 선생님 중 1명의 선생님만 바뀐 거다. 5, 6세 통합반이기는 해도 다 전부터 알던 언니, 오빠들과 한 반이었다. 큰 변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하이디의 등원 거부가 당황스러웠다. 오늘이 지나면 괜찮겠지 내일이 지나면 괜찮겠지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렇게 울다가도 교실에 들어가서는 잘 놀더라는 이야기도 통하지 않았다. 일과 중에도 울먹이며 아빠를 자주 찾는다고 했다. 일주일이면 끝날 줄 알았던 등원 거부가 이주를 넘어섰다.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기는 아이도 부모도 선생님도 모두가 너무 힘이 들었다. 하이디의 정확한 심리상태를 알기 위해 소아정신과를 찾았다. 용기 낸 선택이었는데 심리상담도 쉽지 않았다. 검사를 해야 결과를 알 수 있는데 낯선 장소에서 처음 본 선생님과의 검사에 낯가림 심한 아이가 선뜻 응할 리가 없었다. 


하기 싫다고 도망을 가거나 딴청을 부리거나 다른 말을 하거나. 정확한 검사는 어려웠지만 결과는 나왔다. 또래보다 발달이 늦다는 설명이었다. 파악에 극심한 제약이 있어 과소평가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니 추후 재점검을 받으라는 단서 조항과 함께였다. 결과 상담에서 의사는 감각통합치료와 놀이치료를 권했다. 상담실을 나오며 내 마음에 남은 말을 치료가 아니었다. 엄마가 있는 상황에서 또래 아이들과 함께 노는 기회를 자주 마련해주라는 당부였다. 기억을 되짚었다. 하이디가 나와 함께 친구들을 만난 적이 있었던가. 기억나는 장면은 하나였다. 어린이집에서 하는 엄마 참여 수업 때였다. 


핑계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남편 직장 어린이집에 다니는 터라 동네 친구를 만들어주기도 힘들었고, 놀이터에 나가야 동네 친구가 생긴다는데 아빠 퇴근과 함께 집에 돌아오는 아이에게 놀이터 가는 날은 연중행사였다. 그렇다고 주말에 집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늘 밖으로 나섰다. 공연 관람, 나들이, 여행으로 분주했다. 상황에 닥쳐 생각해보니 내 기준에서만 생각했었다. 주중에 바빠서 미안했던 엄마의 마음을 해소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어쩌면 하이디는 나와 보내는 다른 시간을 기다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료를 선택하기 전에 내가 아이의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기로 했다. 그런 다음에도 상황에 변화가 없다면 그때 치료를 받아도 되지 않을까. 어린이집 선생님도 이런 내 생각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지난 11월, 노을캠핑장에 놀러간 '함께' 친구들

어떻게 하면 아이 친구를 만들어줄 수 있을까.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엄마들이 더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밑져야 본전. 절실하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법. 처음으로 아이를 위해 용기를 냈다. 또래 아이를 키우며 비슷한 육아관을 가진 워킹맘을 찾는 공고를 인터넷에 올렸고, 2015년 성북구 돈암동 근처에 사는 여섯 명의 엄마와 여섯 명의 아이들과 공동육아모임 '함께'를 시작했다. 매주 토요일 하이디는 엄마와 함께 또래 친구들을 만나게 됐다. 친구들 속에 있는 하이디를 보며 아이마다 성장 속도와 성향이 다름을 알게 됐고, 어떤 점은 느리지만 어떤 점은 빠른 아이 모습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 다른 무엇보다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며 아이에게는 또 다른 가족이 생겼고 새로운 신뢰를 경험하며 안정감이 스며들었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하이디는 여전히 예민하다. 새로운 상황에 느리게 적응한다. 하지만 무조건 거부하려고만 하지 않는다. 천천히 다가가고 주저하다가도 도전한다. 여섯 살에 처음으로 들어간 유치원에서도 그랬다. 친구들 무리에 쉽게 끼지 못하고 관찰하며 살피는 아이였다. 선생님은 아이를 서성인다고 설명했다. 가을에 이르러서야 친해진 친구들이 생겼다. 일곱 살이 되며 친한 친구들이 다른 유치원으로 옮기거나 다른 반이 되자 아이는 또다시 서성였다. 그런 아이 입에서 처음으로 '단짝 친구'라는 말이 나왔다. ㅇㅇ랑 단짝 친구라면서 ㅇㅇ랑 무엇을 하고 놀았다고 재잘재잘 이야기를 했다. 같이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노래를 만들고 동화책을 만들었다고 했다. 선생님이 올려주는 사진에서도 그 친구와 함께인 순간이 많았다. 참 궁금했다. 어떤 친구이길래 아이의 마음을 이렇게 사로잡은 것인지 고마웠다. 


또 한 번 용기를 냈다. 처음에는 유치원 선생님께 친구 엄마의 연락처를 물어볼까 했지만 왠지 차갑게 느껴졌다. 뜬금없는 핸드폰 연락이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날로그 방식을 택했다. 노란색 편지지에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편지를 썼다. 둘이 단짝 친구라는데 꼭 한 번 유치원 밖에서 같이 놀게 해주고 싶다고. 저희 집에 초대한다고. 제 연락처이니 연락 부탁드린다고. 부담스럽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고르고 고른 표현을 쓰면서 꼭 연애편지를 쓰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편지를 유치원 선생님을 통해 단짝 친구 엄마에게 전했다. 연락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조바심이 났다. 짝사랑하던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답장을 기다리는 마음이었다. 


드디어 카톡이 왔다. ㅇㅇ도 하이디랑 노는 얘기를 참 많이 한다며 다음 주 중에 같이 놀자는 기다리던 답이었다. 들뜬 목소리로 하이디에게 말했다. "ㅇㅇ 우리 집에 초대했어!" 혹시나 미리 알았다가 아이가 실망하는 일이 생길까 봐 007 작전처럼 편지를 전달했기에 아이는 짐작도 못한 상태였다. 어리둥절해하며 진짜냐고 온다고 한 거냐며 묻고 또 묻는 아이. 유치원 방학 1주일 중 하루인 금요일에 우리 집에 오기로 약속을 했다. 내가 일을 하고 있었어도 유치원 방학에는 휴가를 냈을 거다. 그러면 당연히 아이 친구를 초대할 수 있는 상황. 그래도 나는 지금처럼 초대하지는 않았을 거다. 청소를 해야 하니까. 피곤했을 테니까.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에너지가 굉장히 많이 소모되는 일이니까. 


한쪽만 쌍꺼풀이 있는 매력적인 눈, 양갈래 머리, 수줍은 듯 환하게 웃는 모습이 기억 남는 아이. 사진 속의 단짝 친구가 우리 집에 왔다. 금요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하이디는 친구가 언제 오느냐를 물었고, 약속 시간인 11시는 대체 언제 되느냐를 백 번도 넘게 내게 물었다. 그리고 당부했다. 친절하고 다정하게 친구를 환영해달라고. 공동육아를 하며 아이가 친구들과 노는 모습을 매주 보고 있다. 그때도 이런 기분은 들지 않았다. 정말 비슷한 두 아이. 그동안 유치원에서 보낸 시간이 있어 그렇겠지만 노는 방식도 너무 비슷했다. 한 페이지씩 책을 번갈아 읽고 재미있는 말은 흉내내고 따라 하며 깔깔 웃는다. 비슷한 스타일로 그림을 그리며 놀다 같이 노래를 부르고 소곤소곤 끊임없이 이야기를 한다. 정말 단짝답게 함께 노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사실 친구를 초대하는데 제일 마음에 걸렸던 것은 친구의 엄마였다.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이면 어쩌나. 한 번 놀러 오면 못해도 4시간 이상은 있을 텐데 그 시간 동안 무슨 이야기를 하나. 그래도 한 번이니 견뎌보자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두 아이가 비슷하다는 것은 엄마의 고민도 비슷하다는 뜻이 됐다. 두 아이 모두 변화에 민감했고, 소심해서 자신의 생각을 남들에게 잘 표현하지 못했다. 집이 아닌 곳에서는 큰 볼일을 보지 못해 유치원에서도 큰 볼일을 참는 것까지도 같았다. 같은 고민을 나누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육아관도 비슷했다. 다른 유치원 친구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요즘의 화두는 어떤 학원을 보내는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무엇을 시키는지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보다 좀 더 근본적인 아이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대였다. 함께 했던 4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동생을 데리러 가야 해서 이제는 집에 가야 한다는 말에 ㅇㅇ는 눈물을 글썽였다. 다시 월요일이 되면 또 유치원에서 만날 텐데 두 단짝 친구는 헤어짐을 너무 아쉬워했다. 왜 이런 기회를 조금 더 빨리 만들지 못했을까 아쉬웠지만 또 지금이라도 이런 기회를 만들었다는데 내가 나를 칭찬했다. 비록 두 친구는 다른 초등학교를 가게 됐지만 학원 스케줄을 공유해 이왕이면 같은 학원을 보내고 아니면 주말에 종종 만나 같이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아직은 남아있는 유치원 시간 동안 몇 번 더 서로의 집에 초대하기로 했다. 아이 친구가 엄마 친구가 되는 경험. 공동육아에 이어 두 번째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이들의 마음이 먼저 통했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다른 반이 되고 다른 학교에 가면 잊혀지는 단짝이 아니라 계속 이어질 수 있는 단짝 친구를 아이에게 선물할 수 있게 됐다. 엄마의 용기는 처음에는 또 다른 가족을, 두 번째는 오랜 단짝 친구라는 귀한 선물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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