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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유수집가 Jan 12. 2018

여전히 종일반을 하다

"오늘 휴가예요?" 유치원 등원 길, 나를 보고 놀란 아이 친구 엄마가 묻는다. 휴직을 했다고 하니 당연하듯 친구 엄마는 말한다. "하이디 이제 종일반 안 하겠네요? JW이가 서운해하겠다." 하이디는 여전히 종일반을 한다고 고개를 저으며 멋쩍게 대답을 한다. 당연하듯 질문했으니 당연하듯 대답하면 되는데 나는 괜히 주눅이 들었다. 


어떻게 지내느냐고 묻던 친구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부럽다며 기어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하이디랑 신나게 논다더니 니가 더 신났다." 실컷 부러워하라며 도도하게 반응해도 됐을 이야기에 꼭 그런 건 아니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번에도 나는 괜히 주눅이 들었다. 


제주도에 한 달 동안 여행을 다녀오고, 오키나와도 다녀왔다. 종종 유치원 결석을 하고 아이와 단둘이 데이트도 한다. 특별한 순간들을 만들어 아이와 더 오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일상을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유치원 등원 시간이 2시간 늦어지고, 하원 시간이 1시간 빨라진 정도일 뿐이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는 9시 30분부터 집에 돌아오는 5시까지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물론 아이가 잠든 밤 10시 무렵부터 내가 자고 싶을 때까지도 나 혼자만의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음악을 듣고 영화나 드라마도 보고 가끔은 살림도 한다. 혼자서도 바쁘다. 하루 중 아이랑 함께 보내는 시간보다 나만을 위한 시간이 더 길다. 아마도 그래서 주눅이 들었다보다. 아이의 양육을 위해서라고 절박하게 말하고 시작한 육아휴직인데 아이보다 나를 더 살피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24시간이 48시간인 것처럼 살았다. 직장인과 엄마라는 어느 하나 쉽지 않은 역할을 해내기 위해 분초를 다투며 동동거려야 했다. 휴직을 하고 내게 생긴 시간을 제일 먼저 나 자신과 나누고 싶었다. 그래야 '너를 위해 내 경력을 멈춘 거야', '너 때문에 내가 사회적 성장을 멈춰야 했어'가 아니라 '네 덕분에 나도 좀 채울게', '네 덕분에 나도 좀 쉬어간다'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자리 잡을 것 같았다. 거기에 내가 느긋해져야 아이도 느긋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엄마인데 말 그대로 '육아'휴직인데 아이를 더 빨리 집에 데리고 와 더 긴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의 길이에 연연하지 않을 거다. 지금까지도 양보다는 질이라며 외쳐왔는데 휴직을 했다고 시간이 생겼다고 갑자기 양이 중요해지는 것도 이상하다. 시간의 절대량보다는 일상의 결을 생각할 거다. 눈이 자연스레 떠지는 시간에 일어나고, 스킨십 넘치는 아침 인사를 나누고, 자신의 속도에 맞춰 아침을 먹고, 날씨도 풍경도 여기저기 참견하며 유치원에 가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정하게 이야기하며 집에 오고, 따뜻하게 차린 저녁을 먹고, 까르르 웃으며 신나게 놀고, 나란히 앉아 동화책을 읽는 소소한 일상을 켜켜이 쌓는 것이면 '육아'로는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아낌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작정이다.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는 육아를 하고 싶다. 아이의 삶만큼 엄마의 삶도 존중받는 육아를 하고 싶다. 육아가 어렵고 힘든 대상이 아니라 즐겁고 설레는 일이 되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행복해야 한다. 엄마의 행복이 아이에게 충만하게 전해지는 육아가 내가 바라는 육아다. 그래서 이제는 나를 더 챙기는 내 모습에 주눅 들지 않을 거다. 다음번에 누군가 내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이전과는 다른 대답을 하려 한다. "아니요, 종일반 해요. 저를 위한 시간도 필요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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