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육아모임 '함께'
'아이에게 미안해하지 마세요.' 워킹맘이 되면서 많이 들었던 조언 중 하나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하루의 절반 가까운 시간은 어린이집에 맡겨 미안하고, 주말에도 아이를 앞에 두고 꾸벅꾸벅 졸아 미안했다.
졸지 않으려 공연 관람, 여행 등의 구실을 만들어 밖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와 추억을 나눴다기보다는 무언가를 했다는 자기 위안만 남았다. 같은 처지의 엄마들이 힘을 합치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까? 또래 아이를 키우며 비슷한 육아관을 가진 워킹맘을 찾는 공고를 인터넷에 올렸고, 2015년 서울시 성북구 돈암동 근처에 사는 여섯 명의 엄마와 여섯 명의 아이들과 공동육아모임 '함께'를 시작했다.
현재는 일곱 가족으로 늘어난 '함께'는 매주 토요일마다 모임을 가진다. 한 주에 한 명의 엄마가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과의 놀이 수업을 책임진다. 두 달에 한 번 자기 차례가 돌아와 큰 부담이 없으며 준비 시간도 충분했고, 무엇보다 보조 선생님이 여섯 명이나 되기 때문에 든든했다.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던 물감놀이, 모래그림 그리기, 샌드위치 만들기도 해볼 수 있었다.
모임을 주말에 갖다 보니 가족행사와 겹칠 때가 많다. 그래서 100퍼센트 출석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세 아이 이상 참석할 경우 수업을 진행하며 한 달 회비는 가구당 4만 원. 초과비용이 발생하면 월 단위로 정산해 참여 횟수와 상관없이 똑같이 나눠 부담한다. 처음에는 각자 집에서 수업을 진행하다 좀 더 다양한 활동을 위해 현재는 주민센터를 이용하고 있다. 공간도 넓고 무료라서 좋다.
햇볕 좋은 날에는 실내를 벗어나 공원을 산책하기도 하고,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소풍을 가기도 한다. 한 번은 아이들의 작아진 옷, 흥미가 시들해진 장난감, 안 보는 책을 모아서 다 함께 마을 장터에 참여한 적이 있다. 갖고 놀지 않는 퍼즐인데 막상 판다고 하니 안 된다는 민제(6), 가격표는 꼭 자기가 써야 한다는 지민(7), 친구가 가져온 뿡뿡이 인형을 들어 품에 꼭 안고 있는 선유(7), 구경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찬찬히 살피는 연후(6), 옆 가판대 미미 인형에 눈길이 가는 나우(6), 팔 물건을 설명하는 지효(6), 물건에 대해 하나하나 물어보기 바쁜 재윤(6). 아이들은 '500원' '1000원'을 외치며 물건 팔기에 열심이었다. 판매 담당, 계산 담당, 아이 돌보기 담당으로 역할을 나눈 엄마들도 아이들과 즐거운 추억을 쌓았다.
주변에서는 생판 모르던 사람들과의 공동육아가 괜찮겠느냐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내 대답은 한결같다. "이보다 좋을 순 없다!" 바쁜 워킹맘이 주말을 반납하고 아이를 위해 선뜻 낯선 관계에 응하기로 했다면 좋은 엄마일 것이라는 믿음은 정확히 들어맞았고 우리의 공동육아는 어느덧 삼 년 차에 접어들었다. 첫해는 엄마가 중심이 되어 모임을 운영했고, 이듬해에는 아빠들도 선생님이 되었다. 올해는 평일에도 모임을 진행해보려고 구상 중이다.
공동육아를 통해 아이는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가고, 엄마는 아이마다 성장 속도와 성향이 다르다는 걸 알아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아이와 엄마가 함께 뛰어놀 수 있어 행복하다. 일곱 명의 엄마와 일곱 명의 아이는 어느새 열네 명의 친구가 되었다. 내가 엄마가 된 다음 가장 잘한 선택, 공동육아. 아이들이 곧 초등학생이 될 테지만 우린 지금처럼 함께 웃으며 신나게 뛰어놀 것이다.
해당 글은 https://brunch.co.kr/@lucidjudge/1 글을 바탕으로 다시 작성되었으며,
샘터 2017년 5월호 '공유의시대' 코너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