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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유수집가 Jan 30. 2018

실패해도 괜찮아, 스케이트 도전기

'이제는 더 이상 스케이트를 안 갈 거다. 안 가서 후련하다.'


유치원에서 방학특강으로 스케이트 수업이 있었다. 아이는 넘어질지도 모른다며 가기가 싫단다. 방학이라 유치원에 오지 않는 친구들도 많은데 꼭 가야 되냐며 몇 번을 내게 물었다.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이 큰 아이. 게다가 겁도 많다. 유치원에서 유일하게 줄넘기를 한 개도 하지 못하는 이유도 줄이 무서워서였다. 운동신경 또한 둔하니 겁나는 상황에 대한 대처도 느리고 그러니 더 겁이 나고. 악순환의 연속이다. 


휴직을 했으니 반드시 유치원에 보내야 하는 것은 아니라 잠깐 마음이 흔들렸다. 풀 죽은 아이의 눈빛에 넘어갈 뻔했다. 허리를 숙여 아이와 눈을 맞췄다. 한 번도 타보지 않았는데 넘어질지 안 넘어질지 어떻게 아느냐며 도전해보자고 했다. 힘든 순간에는 선생님께 도움을 청하면 되고 손을 잡아 달라고 해도 좋고 잠시 쉬겠다고 해도 된다고 말했다. "그래, 한 번 해보지 뭐." 아이는 마지못해 대답을 했다. 


한숨을 쉬며 유치원에 가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억지로 사지에 밀어 넣는 것은 아닌지 스케이트를 못 탄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엄마의 욕심은 아닌지 마음이 복잡했다. 자꾸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잘 타고 있으려나 걱정되는 마음과 혹시나 유치원에서 전화가 오지는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 뒤섞였다. 마을버스 네 정거정 거리에 있는 아이스링크에 쫓아가고 싶었다. 눈으로 봐야만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유치원을 나오는 아이의 표정은 밝았다. 흔들리는 건 엄마의 눈빛뿐이었다. 넘어지지 않았다며 단짝 친구와 손을 잡고 씩씩하게 잘 탔다는 아이는 의기양양했다. '금요일에도 넘어지지 않고 당당하게 일어나서 할 거다'는 아이가 대견했다. 겁이 많고 둔한 아이라고 지레 단정 지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이가 잘 할 거라고 믿기보다 못할 거라고 불안했던 엄마였다. 


하지만 너무 추웠던 아이스링크는 결국 문제를 일으켰다. 아이가 독감과 폐렴에 걸린 거다. 다시 한번 재미있게 스케이트를 타야 하는 금요일에 아이는 입원을 했다. 속상한 부모는 아이스링크를 탓했다. 보내지 말걸 후회도 했다. 퇴원을 하고 다시 아이스링크에 가야 하는 날. 아이는 또다시 주저했다. 이번에는 넘어질까 두려운 것이 아니라 다시 입원을 할까 두려워했다. 아이도 부모를 따라 아이스링크 탓을 하고 있었다. 옷을 하나 더 겹쳐 입히며 엄마 마음도 더 굳건히 했다. 아이가 잘 이겨낼 거라고 잘 해낼 거라고 믿었다. 더 이상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수업을 빠졌던 탓인지 오늘은 '실패했지만 잘했다'고 했다. '슝 미끄럼을 타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슬펐다.'고도했다. 아이의 눈치를 살피며 다음번 수업은 갈 수 있겠느냐 물었다. 무릎보호대를 가지고 가겠단다. 그러면 실패하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집에 무릎보호대가 있다는 것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아이는 스스로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상황을 해결해 나가고 있었다. 


마지막 수업. 선생님은 무릎보호대를 하더니 전에 보다 더 과감하게 잘 탔다고 말씀하셨다. '넘어지지 않고 당당하게 했다. 오늘은 실패가 아니다. 내 모습은 신났다. 스케이트가 재미가 있어 가지고다.' 아이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이제 재미를 붙였구나. 끝내 해냈구나.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아빠랑 같이 아이스링크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주한 반전. '이제는 더 이상 스케이트를 안 갈 거다. 안 가서 후련하다.' 일기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아이에게 스케이트는 즐겼기보다는 견뎌낸 시간이었던 거다. 잘 견뎌서 뿌듯했지만 또다시 하고 싶지는 않은 경험. 


대견했다. 무섭다고 피하지 않았다. 하기 싫지만 멈추지 않았다. 무릎보호대를 하고 결국 앞으로 나갔다. 처음 유치원에서 스케이트 수업을 한다고 했을 때 무모한 엄마는 상상했었다. 아이가 한 다리를 들고 우아하게 얼음판을 가르는 모습을. 둔한 운동신경도 겁 많은 마음도 다 이겨낼 만한 소질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결과가 엄마의 상상과 다르면 어떠랴. 아이가 포기하지 않았으면 된 거다. 결국 후련함을 맛봤으면 된 거다. 새삼스레 생각한다. 모든 도전이 꼭 잘하는 성과로 결론을 맺지 않아도 된다고. 


아이의 생각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보호하겠다는 이유로 때로는 아이를 믿지 못해서 도전을 막거나 지연시키는 부모는 되지 말아야겠다. 특히 결과를 미리 짐작해 욕심을 내거나 체념을 하지도 말아야겠다. 그저 아이를 믿고 아이가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아이다운 결론을 맺을 수 있도록 지켜보는 부모가 되고 싶다. 아이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기에 상황에 개입하기보다는 예민하게 상황을 살피며 아이가 힘들어하는 순간에 꼭 안아줄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다. 


아직 내공이 부족하다 보니 이렇게 결심하고도 또 실수하고 후회하고 다시 결심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엉덩방아를 찧었다는 말에 다른 친구들은 어땠냐는 어리석은 질문을 하기도 하고 실패했다는 말에 실패한 게 아니라고 발끈하며 실패는 나쁘다는 인식을 심어 주기도 한다. 이런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일기 쓰기다. 아이는 일기를 쓰며 내게는 말해주지 않았던 마음을 표현하고, 나는 조금 더 차분하게 상황을 살필 수 있다.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말보다 한 번 더 걸러지는 글쓰기로 인해 이성적으로 아이를 격려할 수 있다. 무조건 잘했다가 아닌 어떤 모습이 좋았다는 과정을 칭찬하게 됐다. 


아이는 일기를 쓰기 전 꼭 과거의 일기를 다시 읽어본다. 그리고 말한다. "엄마, 나 스케이트 잘 탔어. 그치?" 자신의 도전을 되새김질하는 거다. 이제 초등학생이 되는 아이. 두려운 도전의 순간들을 더욱 자주 마주하게 될 거다. 그럴 때마다 결국은 해낸 스케이트의 경험이 떠오르기를 바란다. '실패해도 다시 도전해서 성공하는 일은 정말 근사하다'고 했던 '포기하지 않고 용감하게 도전한 모습이 자랑스럽다'고 했던 엄마의 말을 떠올려 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도전의 즐거움을 아는 아이가 되면 좋겠다. 줄넘기 역시 결국은 폴짝 뛰어넘기를 그래서 후련함을 느끼기를 옆에서 묵묵히 하지만 뜨겁게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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