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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유수집가 Mar 19. 2018

초등학교 입학 축하 편지를 쓰다

하이디가 초등학교 입학을 했다. 어린이집에 입학할 때도 유치원에 입학할 때도 늘 불안했었다.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선생님은 따뜻한 분일까. 친구들은 어떨까. 밥은 맛이 있을까. 내가 볼 수 없는 시간 1분 1초까지 모두 걱정으로 채웠다. 세 살부터 시작된 일이니 해가 지날수록 안심하는 시간도 빨라졌다. 아이는 엄마의 불안보다 앞서 적응하고 선생님은 엄마의 걱정보다 따뜻했으며 친구들과는 그 나이 때에 일어나야 하는 일을 겪으며 큰 문제없이 생활했다. 


세 번째 입학인데 이만하면 입학의 베테랑이 되었을 법도 한데 초등학교는 달랐다. 멋모르던 어린이집 입학 때는 낯설어서 싫다고 발버둥 치며 울 수도 있었는데 늘 안아 주던 유치원 선생님께는 싫은 건 싫다고 팩 토라지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는 초등학생이라는 사실을 하이디도 알았기 때문이다. 낯설어도 참고 견뎌야 한다는 것을 하기 싫어도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참고 해야 한다는 것을 하이디는 알았고 그런 하이디를 바라보는 내 시선은 어느 때보다 불안했다. 작고 여린 어깨에 짊어진 커다란 배낭이 꼭 아이가 견뎌야 할 마음의 무게 같아서 휘청거릴까 넘어질까 혹여 주저앉을까 불안했다. 


화장실이 가고 싶을 때는 수업시간 중이어도 참지 말고 손들고 말하면 된다고 당부를 하고 한글을 획순에 맞게 쓰는 연습을 하고 실내화, 연필, 지우개 등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고. 아이의 학교 생활을 미리 예상하며 하나씩 준비를 해나갔지만 불안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준비라고 하는 것도 모두 소소한 것들 뿐이라 누군가 내게 초등학교 입학 준비는 다 됐냐고 물으면 준비할게 뭐 있냐며 겉으로 태연한 척을 했다.


입학식 날 하이디의 담임선생님은 학교 생활 전반적인 안내와 함께 부모에게 숙제 하나를 내주셨다. ' 초등학교 입학 축하 편지 쓰기'였다. A4 사이즈로 써서 보내주면 코팅을 해서 교실에 전시를 해두겠다고 하셨다. 대체 무슨 말을 써야 하나 부담스럽게 부모 숙제라니 불평이 앞섰다. 하지만 책상 앞에 앉아 하이디에게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하며 불평은 안도로 바뀌었다. 


잊고 있었다. 나무만 챙기느라 숲을 봤어야 함을. 화장실 가는 법, 한글 획순, 새로운 학용품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었음을. 엄마의 불안만 생각하느라 하이디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선생님의 숙제를 통해 지금이라도 내가 놓쳤던 것을 찾을 수 있어서. 학생이라는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데 길잡이가 되어줄 이정표를 하이디에게 전해줄 기회를 갖게 되어 참 다행이었다. 


생각해보니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하이디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았다. A4로 종이가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면 넘치고 넘쳐 잔소리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많이 고민했고 많이 덜 어내며 꼭 하고 싶은 말만 남겼다. 하이디가 엄마의 이 마음을 오래오래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어렵고 힘들고 헷갈리는 순간에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엄마의 편지가 떠오르기를 바란다. 오랜만에 받은 숙제가 참 고마웠다. 




사랑하는 하이디에게 

작년 가을 우리 함께 새별오름에 올랐던 기억 나니?  

저 높은 미끄럼틀보다 더 가파르던 길을 헉헉 숨을 몰아쉬며 올라갔던 것.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하이디에게 말했었어.  

“대단하네.” “나도 힘든데 너 정말 잘 오른다.” “씩씩하네.” 

우리는 그때 ‘몰랑’ 놀이를 하면서 올라가고 있었고 

역할 놀이가 재미있어서 참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나.  

중간중간 쉬면서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혔던 기억도 나고.  


하이디야,  

엄마는 하이디의 초등학교생활이 ‘새별오름에 올랐던 날’ 같았으면 좋겠어. 

 

대단하다고 선유를 응원했던 삼촌과 이모들처럼  

하이디 옆에는 언제나 하이디를 응원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한다는 것을 기억해줘.  

그러면 언제든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용기가 불끈 솟을 거야.  


힘든 일이나 어려운 일을 만나면  

‘힘들어서 못해, 어려워서 하기 싫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우리가 몰랑 놀이를 했던 것처럼  

즐겁게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좋겠어.  


그리고 우리가 새별오름에 빨리 올라가려고만 했었다면  

쉬지도 못했을 거고 시원한 바람을 마음껏 느끼지도 못했을 거야.  

무엇인가를 빨리하고 잘 하려고 애쓰기보다  

순간순간을 여유 있게 즐기며 바로 옆에 있는 행복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  

엄마는 오늘 너의 행복이 늘 궁금한 사람이니까.  


뜨겁게 응원해

온 마음으로 사랑해

지금처럼 밝고 씩씩하고 행복한 초등학교 생활이 되기를 기도해


언제나 네 편인 엄마가


+

해바라기처럼 노래와 춤을 즐기며  

리프처럼 상냥한 마음씨로  

반디처럼 주변을 밝게 비추는 하이디 파이팅! 



※ 해바라기, 리프, 반디는 하이디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페어리루'의 캐릭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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