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재미있는 인생
맞벌이 부부인 남편과 내게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나는 수요일과 금요일에 칼퇴. 남편이 야근을 하거나 회식을 해야 한다면 수요일과 금요일. 가급적 지키고자 애쓰지만 깨지는 경우도 더러 있다. 갑자기 남편이 회식을 하게 된 월요일, 내가 하이디를 데리러 유치원에 갔다. 6시가 되자마자 사무실을 나왔지만 유치원에 도착한 시각은 7시 30분. 아이는 홀로 남아 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 엄마는 마음 졸이지만 하이디는 선생님이랑 단둘이 놀 수 있어 좋았다며 기분 좋게 유치원을 나선다.
하이디와 나란히 침대에 누운 밤. 아이는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요일을 하나씩 부르며 유치원에 누가 데리러 오는지를 확인한다. 야근도 야근이고 회사에서 집까지의 거리도 내가 훨씬 멀기 때문에 아빠, 아빠, 아빠...라고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하이디는 또 묻는다. 엄마는 무슨 요일에 일찍 오냐고. 톡 쏘는 아이의 말투에 주눅이 든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며 하이디와 약속을 한다. "수요일과 금요일에 일찍 올게."
이번 주는 특별하게 월요일까지 더해 주 5일 중 3일을 일찍 오겠다는데 하이디는 한숨을 쉰다. 그 소리에 마음이 불안해진 나는 참지 못하고 묻는다. "왜 한숨을 쉬어?" 내 불안을 확신으로 바꾸며 하이디는 대답을 한다. "엄마가 집에 있었으면 좋겠어." 아득해지는 마음을 저 아래 숨기고 씩씩하게 다시 묻는다. "하이디는 유치원에 가면 기분이 어때?" 당연하듯 재미있다고 대답하는 하이디. 그 대답에 나는 말한다.
"엄마도 회사 가면 재미있어. 하이디가 매일 유치원 가서 재미있게 노는 것처럼 엄마도 그래.
하이디만 재미있으면 어떻게 해. 엄마도 재미있어야지."
유치원생이던 아이가 초등학생이 됐고 아이 일곱 살 가을에 육아휴직을 했던 나는 아이 여덟 살 여름에 복직을 했다. 회사는 여전히 바쁘고 육아는 여전히 시간을 바란다. 8시 10분 이후 등교를 권장하는 학교 방침 때문에 7시 10분에 집을 나서는 엄마와 아빠는 하이디의 등교를 지켜볼 수 없다. 한 시간의 공백을 채우러 아침마다 외할아버지 출동. 아빠가 회식이나 야근을 하는 날에는 할머니가 등판한다. 어찌어찌 하이디가 혼자 있는 시간은 없앴지만 8시 10분에 집을 나서 6시까지 밖에 머물러야 하는 아이가 안쓰럽기만 하다.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아가며 10개의 꿈이 있다고 말하는 하이디. "엄마, 나는 생각주머니를 크게 키워서 작가도 될 거야. 엄마가 글 쓰는 모습이 멋있거든." 밖을 떠도는 아이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도 이리저리 아이 스케줄을 맞추느라 머리가 복잡해도 나는 매 순간 나를 제일 앞서 생각하려 한다. 엄마가 멋있어서 자신의 꿈을 정하는 하이디에게 포기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다. 하이디에게 장난감을 더 많이 사주려고 회사에 다닌다는 말을 하기 싫었고, 너의 윤택한 미래를 위해 회사에 다닌다는 말을 하기도 싫었다. 누구 때문도 아닌 나 때문에 일한다고 말했던 엄마였다. 나답게 나로서 내 인생을 살아가는 엄마이고 싶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글을 쓰는 것이 좋았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마음이 복잡하든 평온하든 글을 썼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며 사는 삶. 나는 글을 쓰며 살고 싶다. 세상에 작은 파동을 일으킬 수 있는 글이면 좋겠다. 그 파동은 나를 잃지 않으며 아이를 키우는 내 모습에서 시작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누구의 엄마라는 이름 외에 내 고유한 이름이 중요하다. 늘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살았던 엄마로 딸에게 "나는 엄마처럼 살고 싶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이 말을 듣기까지의 과정이 내 글이 되고 내 꿈이 될 것이라 믿는다.
복직을 하고 나니 다시 바빠졌다. 마음은 분주해지고 시간은 부족해지고 나와 너에 대한 안타까움은 는다. 그래도 나는 뜨겁게 꿈을 향하며 즐겁게 아이를 키울 것이다. 스스로에게 '꿈을 향해 제대로 걷고 있는지'를 늘 제일 먼저 물어볼 것이다. 전에는 육아와 일을 핑계로 제일 쉽게 포기했던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지킬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누구보다 일 잘하는 직원,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는 엄마가 되겠다며 무리하지 않을 마음의 배포가 생겼고 꿈에 대한 확신이 커졌기 때문이다.
나를 포기하지 않고 즐겁게 육아하는 엄마가 될 수 있겠다는 자신은 9개월의 육아휴직이 내게 남긴 선물이다. 육아휴직을 한 뒤에도 아이를 계속 종일반에 보내고 초등학교 1학년에게 매일 방과후 수업을 2개씩 듣게 하며 내가 얻은 시간은 이렇게 많은 글로 남았다. 글은 힘이 있어서 거친 생각은 잘라내고 좋은 생각은 마음에 뿌리를 내리게 한다. 흔들리는 마음은 단단하게 하고 갈팡질팡하는 선택은 곧게 버틸 수 있는 용기를 준다. 그리고 나는 단단해진 내 꿈에 몇 발 더 다가서게 됐다.
돌아보니 한 가지 생각이 남는다. 하이디 덕분에 내가 더 나은 어른이 될 수 있었다는 것. 꿈을 잃지 않는 어른, 아이와 나란히 걸을 수 있는 어른, 화가 날 때도 날 선 말을 가릴 수 있는 어른. 그리고 내 안위만 생각하는 어른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고민하는 어른이 되게도 했다. 엄마는 그래서 고백한다. 세상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짜증을 내다가도 좋아하는 핫초코 한 잔을 사주면 기분이 팔랑해져 우리 엄마 덕분이라고 말하는 하이디에게. "모든 게 다 네 덕분이야. 고마워!"
세상에 하나뿐인 아이 하이디와 세상에 하나뿐인 낯선엄마가 만났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두 명의 특별한 존재에게 엄마는 이래야 해 아이는 저래야 해라는 말은 적용될 수 없다. '엄마가 너무 욕심이 많은 거 아니야?, 아이가 안쓰럽지 않니?, 엄마가 좀 포기하지.' 세상의 시선과 간섭에 구속되지 않고 나와 아이의 속도에 맞춰 우리의 길을 걷고자 한다. 그리고 그 걸음걸음은 앞으도로 계속 글이 되어 세상과 소통할 거다. 여기 조금 낯선 엄마가 있다고. 이런 육아도 있다고. 그리고 우리는 행복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