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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해영, 또 뜨겁게

by 여유수집가

나는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한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18개의 정류장을 지나야 하고 보통 50여 분 정도 버스에 머무른다. 7시 10분에서 20분 사이, 이미 사람으로 가득 찬 버스가 내 앞에 선다. 버스에 오르며 내 눈은 바빠진다. 도대체 어느 쪽 손잡이를 잡고 서야 중간 즈음에라도 앉을 수가 있을까. 아침 버스에서 내가 제일 바라는 것은 자리에 앉아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것. 하지만 쉽지 않다. '지하철 문이 열리면 잽싸게 달려가 빈자리로 몸을 날리는 사람'하면 떠오르는 아줌마. 그 부정적인 고정관념 안에 자리하고 싶지는 않지만 버스라는 상황만 다를 뿐 마음가짐은 결코 다르지 않다. 이제 나도 아줌마인 건가.


아줌마임을 티 내고 싶지도 인정하고 싶지도 않은 나는 나름의 방법을 찾았다. 자리에 욕심내지 않도록 피곤함을 잊게 만드는 방법. 바로, 드라마 보기다. 짬 날 때 읽겠다며 가방 안에는 책도 있고, 회사에서 요구하는 영어 등급을 갖추기 위해 핸드폰에는 각종 영어공부 어플을 깔아 뒀지만 모두 다 피곤을 잊게 해 주지는 못하기에 드라마를 선택했다. 그렇게 보기 시작한 것이 '또 오해영'이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여자 주인공. 자신의 사랑에 거침없는 모습이 참 좋았다. 아낌없이 사랑을 표현하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뜨거움보다는 따뜻함으로 살고 있는 지금 내 모습 때문인지 여자 주인공의 사랑에 질투가 나기도 했다. 이제 내 인생에 앞 뒤 재지 않고 사랑에 몸을 던질 기회는 없겠지. 청춘이 사라지고 아줌마만 남은듯해 안타깝기도 했다. 다른 대상을 탐하는 것이 아닌 지금 내 사람과 시간을 돌려 저렇게 다시 한번 사랑하고 싶다는 드라마적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한 장면을 보며 깨달았다. 나도 지금 누구보다 뜨겁게 앞 뒤 재지 않는 사랑을 하고 있음을.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과 갑자기 떠난 여행에서 술을 마셔서 운전을 하지 못하게 되자 대리운전기사를 불러 서울로 돌아온다. 진한 키스로 서로의 마음을 뜨겁게 확인하고 다시 돌아오는 길, 남자는 자신의 다리를 베고 누운 여자를 지극한 눈길로 바라본다. 그리고 이제 막 떠오르는 해가 여자의 얼굴에 내리자 손을 들어 햇빛을 가려준다. 여기서 내 모습이 오버랩됐다. 사랑이 넘치는 눈길로 사랑을 가득 담은 손길로 사랑하는 사람의 잠을 방해하는 햇빛을 가려주는 것. 바로 내 모습이었다. 물론 그 대상은 딸이지만. 뜨거운 사랑이 식은 게 아니다. 그 대상이 옮겨간 것뿐이다. 남편과 내 사랑의 결실인 딸에게 말이다.


'또 오해영'에서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은 사랑 앞에 정 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랑을 참고 억누르는 남자 VS 미친년 소리도 마다하지 않고 거침없이 사랑을 표현하는 여자. 그리고 드라마는 이 두 차이가 부모에게서 비롯됐음을 보여준다. 어긋난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자란 남자 VS 아낌없는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여자. 부모의 뜨거웠던 사랑은 따뜻해졌지만 이제는 딸이 그 뜨겁디 뜨거운 사랑의 순간을 지난다. 오해영 아빠도 엄마에게 말했다. 당신도 나를 만날 때 그랬다고. 사랑의 대물림이다. 지금 내 사랑이 따뜻함으로 변했다고 서운해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뜨겁게 사랑했었기에 지금 내 딸을 뜨겁게 사랑할 수 있고 내 딸은 내게 배운 사랑으로 뜨겁게 사랑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남자 주인공은 결국 여자 주인공을 통해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행복해진다. 처음에는 여자 주인공에 나를 대입시키며 그녀를 부러워했었고 결말에 이르러는 내 딸도 여자 주인공처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로맨틱 드라마를 보면서도 딸을 떠올리는 내가 어이없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뭐 어떠랴. 또 하나의 사랑지상주의자를 키우는 계기가 된 것을. 오해영처럼 앞 뒤 재지 않고 아낌없이 사랑하고 마음껏 행복한 딸을 바라며 아, 그래! 나는 오늘도 거침없이 저돌적으로 뜨겁게 그녀를 사랑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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