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담임선생님은 매일 수업이 끝나고 나면 오늘은 어떤 수업을 했는지 내일 준비물은 무엇인지 알림글을 학급 홈페이지에 올려주신다. 며칠 전 '내가 잘하는 것을 자신 있게 친구들 앞에서 말하기' 시간을 가졌다는 알림글을 보고 아이에게 물었다.
"하이디는 무엇을 잘한다고 발표했어?"
"나는 당근 연극 도전 금메달이지!"
예상외의 답변이었다. 나는 중국어나 바이올린을 짐작하고 있었다. 조금 더 엉뚱하면 책 만들기 정도. 최근 선생님들은 하이디의 중국어와 바이올린 실력에 대해 칭찬을 많이 하셨고 주로 하는 놀이는 책 만들기라서 이중에 대답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일곱 살 때 혹부리 영감을 실감 나게 했잖아."
그래, 하이디는 일곱 살 유치원 엄마 참여수업의 혹부리 영감 동극에서 주인공인 혹부리 영감을 연기했다. 집에서 연습할 때는 부끄럽다며 몰래 숨어서 하거나 혹부리 영감은 나를 시키고 다른 배역들만 연습하더니 무대에서는 어찌나 능청스럽게 잘하던지 나 역시 깜짝 놀랐다. 평소에는 뒤로 숨거나 얌전 빼던 아이가 갑자기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 모습에 친구 엄마들 역시 크게 놀라며 하이디를 칭찬했다. 아마 그 기억이 하이디에게는 강렬했던 모양이다. 무대에서 해냈다는 뿌듯함과 많은 타인에게 받아본 칭찬이 뒤섞여 강한 기억으로 남은 듯했다.
엄마는 중국어와 바이올린을 떠올릴 때 연극을 떠올린 아이. 어디선가 엄마가 하고 싶은 직업을 아이에게 투영하지 말라고 말했다. 부모가 되고 싶은 일이면 직접 하라고. 중국어를 잘하고 싶은 것도 나이고 다시 될 수 있다면 예술가가 되고 싶은 것도 나다. 내 바람이 투영된 예상 대답. 부끄러웠다. 말로는 아이가 좋아하고 행복한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도 정작 본심은 내 의지에 더 맞춰져 있었다. 아이의 하얀 도화지에 내가 밑그림을 그려 놓고 이 그림이 예쁘다며 아이에게 색칠을 하라고 강요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의 그림은 아이가 직접 그려야 하는데 말이다.
이날 알림글에는 사진도 함께 올라와 있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표정만 살폈다. 하이디가 친구들과 잘 어울려 사진을 찍었는지 찡그린 표정은 없는지가 내 관심사였다. 하이디의 대답을 듣고 다시 홈페이지에 들었갔다.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 목에 건 메달이 궁금해서였다. 애써 사진을 확대해 대회 이름을 읽었다. 미술 대회, 피겨스케이트 대회, 수영 대회, 만들기 대회, 종이접기 대회, 그리기 대회, 태권도 대회, 야구 대회, 수비 대회 그리고 연극 도전 대회 등 다양한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지금 생각하는 다양한 가능성을 직접 그릴 수 있도록 바라봐주는 부모가 되고 싶다. 그리고 그런 학교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식에게 향하는 욕심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겠지만 이렇게 돌아보고 다짐하다 보면 퇴보했더라도 다시 전진하며 결국은 바른 길로 조금씩 나아가게 되지 않을까. 더불어 바란다. 연극을 잘한다는 아이에게 수학 문제를 더 잘 풀어야 한다고 말하는 학교는 아니기를. 배우는 가난하고 불규칙하다며 직업의 잣대를 돈과 안정성으로만 평가하는 사회가 아니기를 바라본다. 부모가 나아가려 애쓰는 것처럼 학교도 사회도 함께 조금씩 나아갈 때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더 행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