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병원 검진으로 오후 반차를 썼다. 2시에 하교하는 하이디와 만나 병원 검진을 마치고 나니 3시 30분. 카페에서 간식을 먹고 한참을 걸어 마을버스를 타고 아파트 단지에 도착해도 4시 30분. 오랜만에 느끼는 기다란 오후. 곧바로 놀이터로 향했다. 평일 오후 아이와의 놀이터 나들이는 너무 오랜만이었다. 신나서 뛰어가는 하이디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뭉클했다. 육아휴직 때는 흔했던 일상인데 불과 몇 개월 사이 다시 너무 특별한 일이 되어버렸다. 친구가 있기를 바랐지만 어린이집에서 하원 하는 꼬마들 뿐인 놀이터. 그래도 아이는 신나게 그네를 탔다.
기다리는 아이도 없어 원하는 만큼 충분히 그네를 타고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놀이터 바닥에 그려진 사방치기가 눈에 들어왔다. 하이디는 즐거운생활 시간에 배웠다며 내게 도전을 해왔다. 아파트 마당에다 돌멩이로 그림을 그려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사방치기를 하던 내 어릴 적이 떠올랐다. 집에 들어가자고 재촉하던 마음을 내던지고 아이와 같은 8살로 돌아가 사방치기를 했다. 엄마가 하던 놀이를 아이와 함께 하는 즐거움은 복잡 미묘했다. 놀이의 신남, 추억의 그리움, 처음 함께 하는 미안함, 잘하고 싶은 승부욕, 실망하는 아이 표정의 사랑스러움 등 많은 마음이 뒤섞였다.
아이가 그네를 타는 20분 동안은 옆에서 맞장구를 쳐주는 것이 지루하기만 했는데 사방치기는 한 시간도 너끈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엄마의 괜한 승부욕은 아이를 심통 나게 했고 하이디는 혼자서만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엄마도 하고 싶다고 다시 끼워달라고 졸랐지만 이미 토라진 아이는 먼저 집에 가자고 했다. 엄마의 못난 욕심 때문에 사방치기는 15분 만에 막을 내렸다. 놀이터에 머문 시간은 40분 남짓. 하이디는 집에 돌아와 시키지 않아도 책을 읽고 독서노트를 쓰고 숙제를 하고 일찍 잠을 잤다. 이 놀이해줘 저 놀이해줘 조르던 아이의 모습은 볼 수 없었던 저녁이었다. 물론 일찍 잠을 잤으니 다음 날 아침에도 기분 좋게 일어나 출근하는 엄마와 아빠를 배웅했고.
고작 40분의 바깥 놀이는 즐거운 오후를 선물했고 평온한 저녁을 가져다주었고 반가운 아침을 만들어줬다. 과장일지도 나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선순환의 시작은 신나는 바깥 놀이가 아니었을까. '단 30분만이라도 매일 이렇게 밖에서 놀 수 있다면!'이라는 바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이치. 빨라야 저녁 7시 30분, 보통은 8시에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내가 그리고 6시가 되어야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가 너무 안타까워졌다. 주 52시간이 되면서 야근은 줄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쉬운 시간. 단 30분을 엄마와 밖에서 놀기가 어려운 아이라니. 내가 욕심이 많은 건지 사회가 육아의 시간을 배려해주지 않는 건지 헷갈린다.
머리를 굴려본다.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내가 아니더라도 30분의 바깥놀이 시간을 만들어줄 수 있을까. 학교에서 방과후 수업을 5시까지 듣고 보호자가 데리러 올 때까지 피아노 학원에 머무르는 아이에게 시터를 구해서 일찍 집에 올 수 있게 하면 가능할까. 아이는 내가 없더라도 놀이터에 나갈 수만 있으면 즐거울까. 그럼 그 시간 오늘 보이지 않던 친구들은 다들 어디에 있을까.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회사 선배가 가끔씩 대학생 일일 놀이시터를 구해 아이와 놀게 해 준다는 이야기도 떠올랐다. 나와 같은 고민의 해결책이었으리라. 나만 하는 고민이 아니라는 생각에 위로가 되면서도 같이 고민해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음에 답답했다.
매일매일이 시간과의 전쟁이다. 출근 시간 한 시간을 늦추지 못해 외할아버지가 아이를 등교시켜야 하고, 퇴근 시간 한 시간을 당기지 못해 아이는 어스름한 햇빛이 남아있는 놀이터도 즐길 수가 없다. 시터를 구해 집에 오는 시간을 당기고, 일일 놀이 시터를 구하고. 이런 개인적인 노력들로 해결이 가능한 문제인 걸까. 그런 것이 아니라면 나는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을까. 공동육아를 하며, 육아휴직을 하며, 한 달 동안 여행을 떠나며 누구보다 놀이의 중요성을 절감했는데 다시 돌아온 워킹맘의 일상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회사 일은 모를 땐 데이터를 분석하고 인터뷰를 시행하고 동료들과 의견을 모으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는데 지금 이 고민은 어떻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하는 것일까.
한동안 주말 공동육아 모임을 확장해 방과후 공동육아 모임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가져보기도 했다. 하교하는 아이들을 공동육아 선생님이 픽업을 해서 특정 공간에 모여 오후를 보내는 모임. 간식도 먹고 숙제도 하고 다 같이 놀이터에서 놀기도 하고. 가능하다면 더 바랄 것이 없는 모임이었지만 일을 하면서 체계적인 모임을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적당한 비용의 적당한 공간을 구하는 것도, 믿을 수 있는 선생님을 모시는 것도, 학교가 각기 다른 아이들을 픽업하는 방식도. 어느 하나 쉽지 않았다. 누군가 전적으로 열정을 갖고 매달려도 실현 가능성이 낮은데 회사일과 육아를 병행하다 보니 더더욱 진전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이미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분들의 조언을 듣고 자료도 찾아보며 의지 있게 도전했지만 결국은 포기! 고민했던 시도가 좌절되고 나니 지금은 더더욱 미궁 속에 빠져있다. 하교 후 놀이터에서 놀 수 있는 시간을 바라는 것이 소수의 욕심인 것인지. 워킹맘은 욕심낼 수 없는 영역에 도전하는 것인지. 나 혼자만이라도 내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겠노라며 나는 시터 구인 공고를 올렸다. 돈을 들여서라도 확보해야겠는 놀이터 시간. 오늘도 답답한 마음은 쌓이고 아이에 대한 안쓰러움은 늘어가고 내 시간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